김장과 겨울나기

김장과 겨울나기

 

오늘은 입동 입니다. 때쯤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친한 아줌마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며 장을 담그는 일입니다. 배춧잎을 숭숭 썰어


동탯국을 끓여 먹으며 배추는 실하네, 무가 다네하시며 김치를 담가 김칫독 꼭꼭 채우며 떠들썩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벅적거림이 생각 납니다. 우리가 김장을


담그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맛있 김치 하나면 겨울을 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rl 때문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겨울에는 김치로 만든 음식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살아계실 이제 장도 끝냈으니,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끄떡없겠네.”시던 호기어린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김장은 겨울을


준비하며 겨울을 비를 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오늘 연중 32주일의 말씀에서 우리가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같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바리사이들과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전에 마르코는 예루살렘에서의 논쟁과 대담 ( 르코 11,27-12,37) 소개한 다음 결론의


말씀으로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는 훈시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시는 상황을 전합니다. 여기에서 율법학자들은 거짓 신앙의 표본이 되고 가난한 부는 신앙인의 귀감이


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누구나 축일에 두루마기 비슷한 것을 예복으 입었습니다. 그런데 율사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예복은 한결 었답니다. 또한 남자들은 성구갑(트필린)


이마와 왼팔 윗부분 묶고 다녔다고 합니다. 성구갑에는 신명기 말씀 6, 4-9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분이신 주님이 시다……<중략> 또한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문설주와 대문에도 놓아라.” 라는 글을 담고 다녔는데 말씀에 따라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에


붙이고 다녔으며 문설주에도 이것을 달아 놓았답니다.

그리고 겉옷 자락 곳에 실과 푸른 실로 꼬아 만든 옷단 술을 달고 다녔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남들보다 성구갑도 큼직하게 달고 옷단 술도 기다랗게 만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율사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선생님 혹은 아버지 (압바, 압히)라고 부르며 인사를 했답니다.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고, 율사가 잔칫집에 오면 주인은 영광스럽게 여겨 윗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마치 본당신부의 모습 같아 섬칫해 집니다.


로만 칼러를 입고(남과 다른 복장을 하고) 신부님하며 인사받기를 아하고, 잔칫집에 가면 윗자리에 앉게 되는 신부의 모습이 상되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공식석상이 아니 로만칼라는 입으려하고, 잔칫집에 가지 않으려고 하며,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을 피하곤 합니다. 이게 맞는 말씀일까요?


사실 칼라는 입는다고 겸손한 것이 아니고, 인사를 받는 것이 겸손한 모습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잔칫집에 가지 않고 집에만 것도 겸손한 모습이 아닐 겁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이렇게 알아들으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해야 일을 하는 것은 행여 격려는 받을 있어도 칭찬 받을 일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 가난한 과부의 위입니다. 예수님이 돈의 가치를 환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히려 돈의 가치를 너무 정확하게 환산한 예수님의


계산법이 리를 놀라게 합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리가 새겨들어야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이스라엘 여자들이 모이는 여자들의 구역 따로 있었는데 거기에는 헌금함 열세 개가 있었습니다. 과부가 넣은 렙톤 두닢은  우리가 사용하는


동전인 쿼터(Quarter) 정도 되는 돈입니다. 데라리온이 하루의 품삯이었고 랩톤은 128분의 1 데나리 온이었으니 말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천주교 신자인가 천원


짜리만 봉헌함에 넣으니 천주교신자라는 농담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돈은 액수가 아니라 관대함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가 하는 문제는


돈의 액수를 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봉사하는가는 시간의 많고 적음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1독서의 열왕기 말씀, 굶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아들과 먹으려고 남겨 두었던 밀가루를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가진 모든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의 처분만 바라자는 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올바른 마음으로 신앙의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과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차이점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대했던 가난한 과부의 밀가루 단지는 비워지지 않았고 기름 병도 마르지


않았다고 1독서는 전합니다. 우리의 계산법과 하느님의 계산법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우리가 행하는 신앙 행위는 바로 이런 관대한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해서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이고 남에게 있게 보이는 것이 구원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관대함을 배우고 기쁨을 살아내는 것은 구원을 살아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장을 충분히 담갔다고 겨울을 편히 지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예를 받는 것이 하늘나라에서의 기쁨과 비례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에게서 배운 관대함을 실천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삶의 기쁨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인생의 겨울인 죽음 준비하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이들입니 .



                                                                                                                                                                       – Fr. 김 두진(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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