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할아버지들이 불을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기쁨은 아마 우리가 상상조차 할수 없을 만큼 대단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동물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지 않아도 되고 뭄서리 치도록 추웠던 지난 겨울처럼 떨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천둥,번개 칠때나 가뭄끝에 일어나는 산불처럼 자연에서 일어나는 불은 보았어도 그것은 무서운 존재 였을뿐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친숙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로 나무였을 두 물질을 마찰 시키는 가운데 일어나는 불, 그것을 만드는 법응 터득한 우리 선조들은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 조상들의 지혜 덕분으로 우리는 오늘날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려서 불을 지펴 끓이고 덮히고 편하게 살게 되었지만 한편 담배연기 마저 내뿜어 내것은 물론 이웃의 허파마저 찌들게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얻어낸 불을 써먹고 내버려두면 꺼져서 매번 그 힘든 마찰을 반복 해야만 했던 조상들의 지혜는 이제 그 (불의 씨)를 보존하는 비법을 찾아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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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인으로 조상님 덕분에 교회안에 드나들게 되었던 나는 모태신앙인 이라고 그 밥그릇으로만 따지자면 (나만큼 오래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구 그래) 어쩌구 하면서 잘 되지도 않는 힘을 목에 주고 다녔어도 가슴속은 불씨 꺼진지 너무 오래되어 싸늘하게 식은 돌덩어리였다.
이렇게 꺼저 버린 가슴의 불은 어찌 내 혼자 힘으로 다시 지펴 낼수있을지 까마득 하였다.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조상들께 그 지혜를 얻어내자.
(마찰)을 반복하여 꺼진불을 다시 살려내야만 내가 살것 같았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신앙의 형제들, 자매들, 그 교우들과 마찰하고 그들의 힘을 구해서 불을 지피자.
내가 가입하고 소속된 영신, 봉사단체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때로는 그 모임도 무료하고 의식화된 형식의 반복인듯한 느낌에 무엇하러 거기에 앉아 있는지 모른체 허공을 바라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나의 교만 일것이다.
불씨를 아주 꺼트려 식어지게 하고 또 다시 불 지피려 고생하기 보다는 나는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바람 같다는 성령께서 싸늘한 내 가슴을 떠나시지 않도록 나는 그 안에 머물고 쉬지말고 마찰을 해야만 한다. 텅 비어 황폐해진 내 가슴을 일곱가지 은총으로 채워 주시도록 바라며
성령께 청해야만 한다. 불씨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기를 청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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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주를
찬양 합니다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를 찬양합니다
기도 하면서
손벽 치면서
눈물 흘리며
주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