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 침실 창밖을 내다보느라니 많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이들일까.
다음 날에도 ,
내가 먹은 밥그릇 둘, 숫가락을 씻고 있었는데
창밖이 요란해서 내다보니까 또 다른 한 무리가 웅성대며 몰려가고들 있었다.
어디들을 가고 있는 걸까.
” 아, 어디로들 가는 거래요? 이마에 땀까지 흘려가며? “
” 어딜 가긴, 얻으려고 가는 게지. 알아보러 가는 거라구. “
” 글쎄 뭘 얻으러 가는 게냐니깐? 뭘 알아본다는 거냐니깐? “
”아, 시방 백세시대잖아. 아직 그걸 모르고 있는 거야?
쎄미나 한대. 오래 살려면 뭘 먹어야하는지 뭐가 좋은 건지 거기 가면 다 가르쳐 준대잖아.
그것도 모르고 밤나 거기 서서 설거지 같은 거나 하고 있으니 뭘 알아.
우리처럼 이렇게 열심히 쫒아다녀도 알까말까인데… 쯪쯪.. 딱하다 딱해. 등신.”
귀가 솔깃했다.
나도 저이들 따라가고 싶었다. 오래 살게 해준다는데…
그릇이고 숫가락이고 다 설거지통에 동댕이 치고 달려나갔다.
골목 안은 조용했다.
어느 결에 그이들은 저만치 갔나보다.
그렇겠지. 여태 여기서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라구?
고갤 떨군 채 부얶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 이그, 이래가지고서야 뭐가 되겠어? 저이들처럼 재빠르기나 해야지.. 남들 뒤도 못 쫒아다니니… “
전남 광주시에 사는 박옥량 아주머니.
올해 백 일세 되신 할머님이시다.
그녀의 따님이신 조의순 씨. 68 세의 전신마비 신체지체자 이시란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 아픈 딸을 혼자 남겨놓고 차마 떠나실 수 없어 백살이 넘도록 살고 계시나 보다.
딸 시중 드시느라 세월 가는 걸 잊으셨나 보다.
그렇게 좀 더 딸을 곁에서 돌보아주라고 하느님께서도 차마 그녀를 데려가실 수 없었나 보다.
그 모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게 됐다.
아! 창피해서 어쩌나.
백세시대 세미나를 쫒아가려 했던 나는 창피해서 어떡한담.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백세까지 살려고 했었을까.
나는 무슨 볼 일 있어서 그렇게 오래 사는 길을 알려준다는 쎄미나엘 가려고 했었을까.
그러지 않아도 보잘 것 없는데 더 창피하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내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벌겋게 됐다.
창피한 내 모습이 능금처럼 붉게 피었다.
숨 쉬고, 먹고 누어서 자고 별 볼일 없어서 눈에 초첨마저 잃고 …
그렇게 오래 또 오래 살기만 하면 좋은 걸까.
아마도 그건 나 자신에도 이웃에게도 무엇보다도 나의 하느님께 무거운 짐노릇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내가 스스로에게 그 당위성을 묻기 전에 주님이 먼저 나에게 묻고 계신 것만 같다.
”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 ( 마태11:7 )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아주 야무진 바램이 하나 있다.
만약에, 별 탈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가 갑자기,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긴다면
나의 하느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려내셨던 일처럼
한 반나절만 다시 살려주셔서 가까운 이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 여보게, 잘 지내시나? “
” 그럼. 잘 지내고 말고. 그런데 왜 요즘 소식이 뜸했나?”
” 저… 여보게. 실은 말이야, 내가 오늘 아침에 이 세상을 떠났다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작별인사할 수 있도록
날 잠시 다시 깨워주셨다네.
부디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게나. “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은총일까.
” 그러니께 그 때를 기다려서 작별인사 못나눌까 염려하느니 바로 주어진 시간, 허락받은 오늘을 잘살아가면 되자녀…
안그려? 이그… “
비단 나 자신을 위한 바램이긴 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