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대림절을 맞으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실 하느님을 만날 것인지를
그 길 안내를 주시기 위해 신동민(스테파노) 신부님이 특별히 바쁘신 중에 틈을 내시어 우리 교회를 찾아 강론을 주셨다. (사랑)이 그 주제였다.
그리고 그 명제를 제목으로 삼아 묵상하기를 주문하셨다.
제목이 너무 벅차고 엄청나서 어떻게 가슴에 내려 담아 나의 살로,   피로 만들 것인가
엄두도 안났으나 그렇게 각별히 이르신 것을 그냥 내려 놓을 수도 없어 피상적으로 더듬어서나마 나름대로 생가해 보았다.

(사랑) !
그렇다.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많이 그리고 쉽게 사랑을 말하는가.
그러면서도 과연 사랑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정의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성형외과에서 걸어나오는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느꼈다고  말하는 젊은이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바다보다 넓다는 우리 엄마들의 자식 사랑을 단순한 값어치로 헤아릴 수도 어렵겠지마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초월하는 하느님의 사람 사랑을 사람들은 그저 무한대라고 말 하는 이외의 가늠해 볼  방법이나 있을까.

사랑은 실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나 어떤 매개체를 통하여 그 사랑의 흔적으로서 결정체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물리적이 아니기때문에 사랑은 거리나 시간에도 구속될 수 없을 것이다.
첫 눈에 사랑을 느낀다거나 먼 곳에 떨어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래서 사랑엔 국경이 없다는 표현도 나왔겠지만  때론 그 때문에 굴절된 사랑의 표현도 있어 보인다.

중년의 여선생이 어린 학생과 사랑놀이를 꾀하고 어제까지도 너 없는 세상은 암흑이라던 청년이 오늘 만나 새로운 애인이 생겼으니 절교하자고 여인을 상처주는 이런 비뚤어진 놀음들은 사랑이란 말을 오도하고 모독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데 도덕이나 규범같은 것을 적용하고 제약되어야하는가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엄격한 도덕과 불문율등으로 매여있던 독일에서 젊은이들 가운데서 큰 파문과 폭발적인 센세이숀을 불러왔었다는 괴테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은 이미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하여 잘 살고 있는 여인을 사랑하여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파멸에 몰고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남기고 끝난다.

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것 없다는 부모의 자식사랑에도 편애를 느끼는 한 집안의 형제간에도 사랑에 대한 질투로 동생 아벨을 죽이기까지 한 카인도 있지 않은가.
사람간의 사랑에 국경이 있어야 한다고도 없어야 한다고도 단순히 말 하기는 어렵고 논란의 소지가 있겠으나 의지와 자제력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경우는 있을 법하다.

높은 돌담 안에 사는 신분이 다른 쥴리엣을 죽도록 사랑했던 로미오에겐 사회 규범이나 풍습을 초월했으나 순수해 보였던 것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었을까.

로미오는 애간장 타는 마음을 사랑의 노래로 말하였었지만 내가 로미오였다면 무슨 말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러브레터를 어떻게 멋지게 꾸밀 수 있을까.

My darling Juliet,

… ….
… … …..
I love you.

Forever yours,
Romeo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 이상 더 할 말이 있었을까.

이 즈음 안팎으로 불경기고 어렵다는 세월을 살면서 꾸며낸 이야기를 생각한다.

먼 객지에 가서 고생하던 외 아들이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걱정끝에 이웃에 사정하여 쌀 한 공기 얻어와 따뜻한 밥을 상에 올려 아들을 반긴다.
상에 밥이 한 그릇인 것을 보고 의아한 아들에게, “난 널 기다리다 못해 배 고파서 혼자 방금 전에 먹었구나. 어서 식기 전에 먹거라.”
정신없이 게 눈 감추듯 퍼 먹던 아들은 아무래도 돌아서 바느질만 하는 엄마가 수상쩍기만 했다. 모자의 혈육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전갈이 전해졌다.
엄마는 쌀이 모자라 굶고 앉아 계신 게 분명했다.
가슴이 찡해오는 아들은 이제 겨우 두어 숫가락 남았지만 배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상을 물렸다. 밥상을 들고 나간 엄마를 문 틈으로 지켜 보았다.
부뚜막에 앉지도 못하고 엄마는 눈물과 함께 범벅이된 아들이 남긴 밥을 정신없이 떠 잡숫고 계셨다. 뛰쳐 나온 두 모자는 이제 더 숨길 것이 없었다.
부둥켜 안은 모자는 아들 사랑, 엄마 사랑을 한 마디 말로 잇찌 못하여도 밤 새도록 눈물로 사랑을 나누고 새웠을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무한히 너르신 극히 한 부분의 모습이고 우리가 그렇게 정성을 다 하고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여 사랑하여야 할 우리의 주님이 아닐까?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요한 21.15)

어쩌면 가지고 계신 쌀로 지은 밥을 모두 나를 먹여주시고 이 추위에 내가 살고 있는 이 골목어귀에 서서 걸인의 모습을 하고 추위에 떨고 계실지 모를  주님의 사랑을 가슴이 겹도록 느껴보며 내가 먹다 남긴 한 숫가락일 망정 이웃의 누구와 나눌 수 있을 좁쌀만한 사랑이라도 나는 품을 수 있을까를  생각케 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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