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한분은 음식만드는 일이 취미라고 할만큼 좋아하고 또 몇차레 초대를 받아 먹어보기도 하였는데
정말이지 솜씨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한국요리만이 아니고 불란서요리까지 숙달하고 있다며 그 부인되시는 분은 남편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며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인은 그저 늘 수고라고 해야 남편이 만들어 놓는 음식들을 식탁에 놓는 일만 하면
언제나 맛있는 요리를 먹게되니 안 그렇겠어요?
저는 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부얶에서 음식만드는 일을 아주 무지무지 싫어하고 또 솜씨 또한 제로에 가까운 걸 부끄럽지만 고백 안 할 수 없네요.
그래서 늘,
눈에 뜨이는 재료들을 몽땅 한꺼번에 냄비에 쏟아넣고 부글부글 끓여서는 밥과 김치 그렇게 세가지 메뉴가 고정되다 시피 해서 며칠동안 다 먹은 다음에 또 그 것을 반복하고 그러지요.
이름이 좋아 제가 부대찌게라고 이름 지었어요.
어떤 때는 된장고추장 때문인지 맛이 그럭저럭 먹을만 해서, ” 식당음식 이보다 더 맛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혼자 큰소릴 중얼대는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거의 비슷한 재료를 넣었는데도 정말 양심을 가지고는 먹어줄 수 없을 만큼 요상한 맛이라 스스로 한숨까지 쉬기도 하지요.
” 이거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거 맞아? 말 좀 해봐.”
제가 절 보고 욱박지르지요.
언젠가
시장엘 갔다가 김치 한병 값이 너무 비싼듯 하기에 용감하게 배추 한포기를 집어 가지고 와서 제솜씨를 망각하고
만용을 부려 김치를 직접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제깐엔 파, 마늘, 고추가루 그리고 물론 소금도 잊지않고 넣었지요.
냉장고에 한 일주일 쯤 넣었다가 이젠 잘 익었겠지 하고 밥도 새로 짓고 그 부대찌게까지 새로 만들어 식탁에 올리고는 혼자 흐믓해서 미소까지 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 아니 이렇게 조금 수고하면 김치한병이 뚝딱 생기는데 그동안 괜히 비싼 돈 주고 사 먹고 그랬네.”
그러면서 밥에다 김치를 올려서 입에 넣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넣었던 음식을 뱉어내고 말았습니다.
김치맛은 전혀 없이 무슨 쓴 금계랍 같은 쓴 약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그만하면 들어갈 재료 다 넣은 셈인데 덜 익었나 해서 며칠을 더 기다렸다 멋어도 마찬가지여서
음식쓰레기 버리는 걸 아주 싫어하는 저였지만 눈물 머금고 내다 버리고 말았어요.
사람이 먹을 음식 같지가 않았습니다.
김치를 우섭게 보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걸 뭘 자랑이라고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았나 하시겠지만 소금이야길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우리는 소금을 안 먹으면 살 수가 없고 또 너무 많이 먹으면 여러 건강상 부작용도 생긴다고 하니 적당한 량이 어느만큼인지 가늠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잉태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전 까지 생활하는 모태안에는 양수라고 하는 소금물퉁이 있어 아기가 자라는데 필요한 건강을 도와주고 또 그 안에서 유영도 하게 되어 다치는 걸 예방하는 일도 한다고 하지요.
창조주 하느님의 신비스런 창조작업은 과연 입을 다물 수 없으리만치 위대한 것 같습니다.
소금이야기를 하다보니 복음서에 있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소금이야기가 떠오릅니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5:13)
요즘 세상을 살아가며 보고 또 느끼게 되는 일은 날이 갈수록 인심은 각박해져 가고 흉흉하고 피폐해져만 가는 것 같아 많은 이들이 염려하고 있다 여겨집니다.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러 다른 원인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어찌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 소금이 제 맛을 잃어가기 때문) 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선포하며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의 다른 종파를 따지지 않고라도 우리 가톨릭 교우만도
수억명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수억명이라면 그야말로 모래알 처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의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우리 교우들이 예수님의 당부를 마음에 담고 늘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만 않는다면
이 혼탁한 세상을 김치처럼 소금맛으로 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지금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역할을 하고 빛이 되기를 당부하시면서 고난을 당하시다 십자가에 까지 달리신 주님은 얼마나 속 상해 하고 계실까 생각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맛을 잃고 있는 소금을 다른 수억명의 교우들에게 그 탓을 돌리기 전에 바로 저 자신에서 부터 그 탓을 찾아야 함이 마땅할 것으로 부끄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금도 제대로 간을 맞출지 몰라 김치 한병을 버린 솜씨,
부대찌게 만든다고 애만 쓰고는 간도 안 맞고 맛도 엉망을 만들어 놓는 그 서툰 솜씨가 바로 세상에 나가 소금의 맛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가슴에 손을 얹고 회개해 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