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신앙생활

 

 

벌써 10월1일입니다. 10월의 한국은 국군의 날을 시작으로 개천절, 추석명절 등 많은 공휴일이 있어 황금연휴를 즐기는 때입니다. 한국 교회는 10월을 전교의 달로 정하였고, 로사리오 성월 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전구로 세상의 모든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도록 복음을 선포해 전교하는 달입니다.

 

오늘 연중 제 26주일의 복음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라고 일렀을 때, 맏아들은 “싫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반면에, 다른 아들은 처음에는 “예”하고 대답 하였지만,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고 물으시며,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십니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하고 행동으로 옮긴 아들은 왜 없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읽어보면 첫째나 둘째나 훌륭한 아들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조금 나은 아들이 안가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일하러 간 아들이라는 말씀인데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마음을 고쳐먹어 회개해야 할 사람이란 뜻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 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에제18,27)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으로 이룬 업적을 보고 그에 따르는 보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보십니다. 죄인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례 겁을 먹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포기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로마 8,3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맏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은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말뿐인 고백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각이 아니고 생활 자체가 신앙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비록 죄인으로 여겨졌던 ‘세리와 창녀’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하느님께 엄청난 보상을 받을 것이라 오늘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의 제2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필립 2, 3) 우리의 삶이 신앙으로 가득차 있다면 (신앙을 생활화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만 돌보는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살지 말아야 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리와 창녀들은 세상이 정한 죄인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당대의 눈으로는 올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모두가 회개할 죄인들이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아버지의 말씀대로 포도밭에 가겠다고 하고 일하러 간 아들이 없었듯 말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에게서 큰 차이가 있는데, 한 쪽은 자신의 죄를 알고, 그 죄로 인해 힘들어 했고, 용서를 청하는 마음조차 두려워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 쪽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며, 오히려 타인의 죄를 밟고 일어선 위선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덜 지은 사람과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구분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로 힘들어하고, 아픈 마음을 안고 사는 이들을 위로하셨으며 그들도 하느님의 백성임을 일깨워 주는 기쁜 소식의 선포자 아니십니까? 세상에는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뉠 수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가는 현실이 우리의 삶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회개와 보속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삶은 겸손한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내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 하십시오."(필립 2,5)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마음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겸손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가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도다.” (필립 2, 10-11)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작년 12월 초 사고로 팔과 다리를 다쳐 꼼짝 못하고 누워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온전치는 않지만 천천히 걸을 수 있고 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환자 (Patient)는 Pain(고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Patient (인내)를 배우는 사람이라 엊그제 말씀드린 것 같은데 벌써 그 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걷지 못해 기도해 주는 이에게 감사하며 인내하며 겸손할 수밖에 없었고, 뛰지 못해 천천히 생각하고 감사하여 겸손할 수밖에 없었던 그 Patient의 마음을 되찾아 내는 것도 저에겐 회개가 되겠지요?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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