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버리고 떠나 왔어요 )
” 전부 다 버리고 떠나 왔어요.
집도, 자동차도 모두 버리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달렸는데 그까짓 게 문젭니까? “
일본의 후꾸시마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던 한 동포는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전해 듣는 이 마저도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니 당사자는 얼마나 아펏을까?
그의 절규하는 그 마음에는 아마도 상반된 다른 두 마음이 엇갈리고 있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알뜰하게 모아서 장만했던 그 모든 재산을 단 한 순간에 그 자리에 다 내버리고 서둘러 떠나야 했던 회한, 억울함 그리고 분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 발생해서 단 15 초만에 온마을을 덥쳤다는 쓰나미.
조금 전까지도 꿈에서도 예상 못했던 그 파도, 그래서 마음의 준비조차 할 수 없었던
한 순간에 모든것을 다 덥치고 다 쓸어가는 그 성난듯한 자연으로부터
목숨을 건져서 빠져나와 ‘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
이 두가지 다른 마음이 한데 엉켜 그는 몸부림치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서 나의 부모의 사연이 떠오른다.
해방되자 곧 발생한 공산당의 협박을 피해 모든 걸 다 버리고 자식들만 챙겨서 한밤에 도망쳐 남한으로 떠나야 했었던 나의 부모도 그런 심경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일들은 언제나 나에게 야누스의 얼굴을 만들어 주는 것일까?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다.
그것은 나하고는 수만리 떨어져 살고 있던 그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가 당하고 있는 그 일은 바로 나의 일일지 모른다.
쓰나미가 아니라면 어떤 엄청난 다른 종류의 파도가 바로 다음 순간에 나를 덥쳐올지
모른다. 그이도 바로 15 초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이 늘 하던 일상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걸까?
내게 만약 재산이 있다면 환난이 닥치기 전에 다 버려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어떤 일을 만날지도 모를 판이니 아예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을까?
내가 예수님께 그렇게 여쭌다면 아마도 주님은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고개를 저으실 것 같다.
” 늘 열심히 살고 그러다가 (좋은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할 경우를 만나거든, (루카10, 29) 머뭇거리지 말고 선한 일을 행하여라. ” 그렇게 일깨워 주실 것 같다.
( Disaster 그리고 Dow Jones )
뉴스에 나온 앵커는 일본의 재난을 알려주고난 후 곧 이어서 증권시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같이 두뇌회전이 잽싸게 움직이지 않는 어정쩡한 사람은 이 두가지의 전혀 다른 상황 사이를 얼른 건너 뛰는 일이 잘 안되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은 첫 반응을 이렇게 받고 있었다.
” 아니 지금 저렇게 엄청나고 무서운 불행을 전하면서 숨 돌릴 틈도없이 경제지표를 발표하다니? 그까짓 증권시세 좀 참았다가 하면 안되는 거야? ”
그러나 세상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재난은 재난이고 그 재난이 증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슴조리며 그 변화를 안타깝게 입에 침이 마르는 투자자들이 있기때문에 방송사는 곧바로 그것을 전하지 않는다면
큰 손들이 멍청한 방송사라며 스폰서 서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사는 야누스의 얼굴을 감출 수가 없다.
어제까지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머리를 맞대고 정다운 얘기를 나누었던 그이가 졸지에 내 곁을 떠나가면 나는 장례미사에 참례하고 묘지에 가서 그가 묻히는 것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고 곧 돌아와서는 부페 식당에 가서 또 다른 이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 먹고 마시며 킥킥거리는 야누스는 바로 나의 얼굴이 아닐까?
언제나 근엄한 표정으로 애처가의 평을 듣고 있던 어떤 이가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돌변하여 목에 핏줄을 세우고는 폭군행세를 한다면,
언제나 부드럽고 남들 앞에서 남편을 치켜 세우던 현모양처가 집에 들어와서 곧 앙칼진 고양이로 변신을 식은죽 먹기로 할 수 있다면,
야누스는 바로 그 집안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일이다.
하느님을 야누스의 모습으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술 반 그리고 물을 반 섞으면 술맛도 물맛도 아니다.
하느님은 그런것은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한 발은 이쪽에 또 다른 한 발은 저쪽에 적당히 담그고 적당히 갔다가 왔다가 그렇게 하면 그분은 훗날 문을 두드리는 나에게 ” 나는 도무지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
문을 닫으시겠다고 하셨다.
야누스는 그때 이쪽에도 저쪽에도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주님의 베시지는 참으로 그 무서운 쓰나미의 파도보다 더 준엄하다다는 생각에 내 가슴이 떨려 나오는 소리가 이 밖에서도 들린다.
( 엘리자베스 테일러 )
중학교 시절.
별다른 오락이라고는 없었던 시절.
중학생이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들어앉아 숙제라도 열심히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고는 좀이 쑤시던 나는 도서관 대신 영화관을 열심히 찾아갔었다.
그것도 악착같이 (학생입장불가) 라고 써 있는 영화만 골라서 갔었는지 아니면
거의 모든 영화는 다 학생은 못들어오게 하였는지 나의 양심은 솔직히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냥 기억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학생도 어서 오라고 그랬던 영화는 백개중 하나 있을듯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 없어도 어른들 만으로도 늘 넘치던 시절이었으니.
그날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영화를 신나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극장이 술렁거렸다.
학생들을 잡으러 단속반이 출동했다고 했다.
동작 빠르게 문앞까지 나갔는데 하필이면 단속반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모자를 뺏으며 내일 교무실에 가서 찾아가라고 했다.
교무실에 가서 어떻게 처벌됐는지 그런 것은 지금 하려는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별 중요한 것도 아니니 생략하기로.
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계하였다.
백년에 한번 나올만 하다고 했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배우, 미인이었던 그녀였다.
그녀를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그 (죄많은 여인)을 생각한다.
간음하다 잡혀서 예수님앞에 끌려오고 돌팔매를 맞을뻔 했던 그 여인.
엘리자베스도 정식 결혼을 하면서 맞았던 남자만 여덟이나 되었다.
새사람을 만날때마다 그 남자를 죽도록 사랑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