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영성체

 

 

미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제사는 주례하는 어른들의 몫이고 나머지는 구경꾼에 불과했습니 다.

특히 여성들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여 외부인사처럼 대접을 받기 일쑤였으며, 젯상 차리는 일에만 골몰해야 하는 노동자가 될 뿐이었습니다. 미사 성제를 잔치라 보면 어떨까요? 잔치에 참여하는 이들은 능동적이고 큰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라 우리 문화에서 미사를 잔치로 알아듣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않나 싶습니다.

 

잔치의 중요한 것이 음식을 나누는 것인데 우리는 이 신앙의 잔치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떻게 성체를 모셔야 하는지 헷갈리시는 분이 많이 계시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성체는 거룩한 주님의 몸이기에 지극히 경건하게 받아 모셔야 합니다.

 

4세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 때 손바닥을 평평하게 하거나, 손가락을 펼치지 말고 왼손을 오른손 위에 올려 임금님을 맞이하는 옥좌처럼 만드십시오. 그리고 손을 약간 오그려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아멘’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 성체를 손으로 집어 눈을 거룩하게 하면서 입으로 모십시오. 그러나 이때 성체를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영성체 후 기도를 기다리면서 그러한 신비를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라는 가르침으로 영성체에 관한 교리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가르침에서는 그 당시 이미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대단한 존경과 함께 손으로 모시는 영성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는 거룩한 신비에 대한 외경의 표지로 입으로 영성체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는 포도주의 형상을 한 그리스도의 피를 빵과 같이 모시는 양형 영성체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교회와 신앙의 분열을 초래한 16세기에 벌어진 논쟁에서 신자들에게도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이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들에게도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다시 허락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외경심 없는 마음으로 나아가 무례하게 성체를 모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영성체하는 신자들은 영적으로 합당하게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특히 중죄를 범한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 교회,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않고서 ‘주님의 식탁’ 앞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 중세에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수도자들조차도 일 년에 몇 차례만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러자 교황과 공의회는 영성체를 자주 할 것을 권고하였습 니다.

다만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스스로 내적 성찰을 통해 그릇된 길에서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야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불행하게도 영성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적 성찰 없이 무의식적으로 성체를 영하곤 합니다.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인 영성체

성체를 합당하게 모시기 위해서 신자들은 내적으로나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체를 모시는데 필요한 외적 조건도 존중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셔야 합니다. 이러한 경외심은 몸의 자세로도 드러납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자세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신자들은 서서 영성체를 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손바닥 위에 수건을 올려놓고 영성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입으로 영성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체를 자주 모시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시절도 있었고, 또 어떤 시절에는 영성체를 자주 해야 한다는 권고가 따랐습니다. 이 모든 변화된 영성체 형식은 경외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서서 영성체 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신자는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교회에서는 무릎을 꿇거나 혹은 서서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는 입으로 모시거나 손으로 모실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통하여 야기되는 영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 인물은 주님을 자신의 지붕 아래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 카르파나움의 백인대장입니다. 미국 미사 경본을 보면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는 표현을 Lord, I am not worthy that you should enter under my roof, but only say the word and my soul shall be healed.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6 참조).

 

그리고 또 한 인물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기 위하여 기쁨에 넘쳐 앞질러 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 자캐오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루카 19,5-6)

죄인인 자캐오를 찾아 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기쁘게 응답하는 자캐오…… 성서 안에 나오는 이 두 인물은 우리게 어떻게 예수님(성체)을 영접해야 할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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