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감사

 

 

 

 

인내와 감사

 

 

오랜만에 여러분들에게 글로 인사드립니다. 12월 6일에 사고가 나서 팔이 아파 글을 쓰지 못하다가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

나은 듯해서 이렇게 글로 인사드립니다.

 

올해는 정유년이며 붉은 닭의 해라고 합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영리한 짐승입니다. 이는 선언, 깨달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또한 닭은 새벽을 알림으로 밤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영물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붉은 닭이 가진 영미함으로 모든 가정이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해가되고, 세상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어 기쁨과 희망으로 설계되는 한해였으면 합니다.

 

나는 이번 사고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까짓 크리스마스 조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좀 더 잘하려는 성급함이 불러온

참사(?)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운 첫 번째의 주제는 인내입니다. 영어로 환자를 patient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아픈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내심, 끈기 있게, 참을성이 있는 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환자는 인내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인내를 배워나갑니다. 고통은 인내하게 만듭니다. 아프면 그저 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부님

참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 고통을 참으세요?" 라고 하지만 별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프면 참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느님 10분만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만큼 하루 종일 아플 땐 너무 힘들었습니다. 진통제를 먹는다고 하지만 멍하게 30분을 보내면 다시 아픔이 오고 3시간 반을 기다려야 진통제를 먹을 수 있었던 시간을 다시 반복해 보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기다림을 배운다는 것은 내게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사실 밖에 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살았습니다. 해서 부딪치더라도 밀어붙이고 사는 것이 본당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과 발이 부러지고 보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움직이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이렇게 서로가 어울려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었습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에 말입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아내의 도움 없이, 남편의 도움 없이, 자녀의 협조 없이, 혹은 이웃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삽니까? 그러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함께 사는 이들에게 쉽게 실망하고, 불평하며, 화내고, 부딪치며

밀어붙이고 삽니까? 그 무엇보다 먼저 인내를 배울 수 있음이 이번 사고의 큰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인내는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로 시작하는 고린토 전서의 말씀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결론 냅니다. 이런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말씀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인내를 놓치고 산 것은 사랑은 인내여야 함을 모르고 산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감사함이었습니다.

환자가 되면 일단 Privacy (사생활)은 없습니다. 손발에 기브스를 하고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도 없을 때 간호사에게 부탁을 하면 바지 내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속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그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무지 독한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화장실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쩌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갈 수 없고 병실에 있는 화장실 대용 변기에 앉아 있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아무소리 안하고 치워내는 간호사에게 얼마나 감사했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다가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을 때의 기쁨과 감사함, 간호사가 적셔주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한 손으로 처음 세수 하는

순간의 감사함, 아프긴 하지만 두 손으로 얼굴에 물을 묻히는 순간의 감사함, 12월 6일 병원에 가 1월 6일 한 달 만에 샤워하던 때의 감격과 감사함, 혼자서 움직이고 씻을 수 있다는 것의 감사함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아플 때 만나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늘 웃으며 다가오던 간호사, 재활을 도와 준 재활운동 선생들, 한국에서 가족을 떠나 나를 돕기 위해 와준 동생 그리고 동생을 보내준 매제와 조카들, 밥걱정 안하고 매일 밥을 먹게 된 감사함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루는 재활센터에 입구에서 안내하는

직원이 내게 물어왔습니다. "혹시 한국의 유명한 가수세요?" 그만큼 내가 재활센터에 있을 때 찾아온 많은 형제자매들의 방문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몸이 아파 누워 쉬고 싶어도 찾아오시는 신자들 덕에 쉴 수 없었지만, 얼마나 감사하던 지요. 이 자리를 빌어

기도해 주시고 음식을 싸다 주시고,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설사 찾아오시지 못했지만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본당신부 없이 아무런 불편 없도록 일해 주신 Don Webber신부님, 정연우신부님과 이인섭신부님, 본당 수녀님 두 분, 그리고 사목회장과 사목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깜짝 방문해 주신 John Manz 주교님과 디너리의 많은 신부님들의 응원에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을 어떠하십니까?

감사할 일이 정말로 없을까요? 함께 있어 든든한 아내, 남편, 자녀, 그리고 이웃들,……. 그들의 도움이 얼마나 감사하며 이런 삶을 주신 하느님의 배려는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소금다워야 하고 빛이 빛다워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 해서 2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신비는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선포된다고 합니다. 이는 자기를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처럼 나누고, 맞아들이고, 덮어주며, 숨지 않는 것은 자기 버림 없이는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드러날 때 "그리하여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아물 것이다."는 이사야 말씀이 선포됩니다.

 

2017 정유년에는 인내와 감사의 삶으로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붉은 닭의 해에 복 많이 지으시고 서로에게 인내하고 감사하며 빛과 소금으로 그리스도의 기쁨을 사시는 해 되시기 바랍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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