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은 전교주일입니다.
매년 10월의 끝에서 2번째 주일로 전교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교회가 정한 주일입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종교 이념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며, 고결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전 세계의 많은 운동들이 의미있게 사는 방식이나 고귀한 이상들을 고취시킵니다. 교회의 선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시고 활동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은혜로운 구원의 ‘때’를 역사 안에 현존하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로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 되시어, 그분을 믿음과 사랑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마치 비가 땅을 적시듯, 사람과 피조물들에게 결실을 거두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 스며든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또다시 곳곳에 부활의 싹이 돋아납니다. 이는 막을 수 없는 힘입니다”(「복음의 기쁨」, 276항).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1항]임을 결코 잊지 맙시다. 복음이란, 계속해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한 사람, 겸손하고 경건한 믿음으로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 실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분의 생명을 나누도록 초대하시는 한 사람입니다. ‘세례성사’로, 복음은 새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주며, 성령으로 깨우쳐 주고 변모시켜 줍니다. ‘견진성사’로, 복음은 강건하게 하는 도유(塗油)가 되어, 동일한 성령으로 증언과 동반을 위한 새로운 방도와 전략을 가르쳐 줍니다. ‘성체성사’로, 복음은 새 생명을 위한 양식 곧 “불사 약”(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20, 2)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17년 전교 주일 담화 (2017년 10월 22일)
아주 오래 전에,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믿을래? 안 믿을래?" 그리고 안 믿는다하면 무식한 미개인들 이라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목을 잘랐답니다. 남미의 많 은 나라들의 기독 문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복음, 아니 생명을 주는 복음이라도 사람들에게 강요 되어진다면 옛날 선교사의 단두대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단두대의 폭력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 다. 비록 단두대에서 목을 쳐내지는 않는다 해도 정치적 욕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종교의 색깔로 치장된 테러는 아직도 무고한 사 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들 을 수 있는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외침도 하느님을 빙자한 폭력입니다.
"예수 구원 불신 지옥!" 하느님은 구원을 미끼로 협박하시는 분일까요? 하느님은 인간 모두를 사랑으로 지어내신 분이시고, 비와 햇볕을 골고루 내리시는 분이신데 믿음 하나로 상벌을 내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교황님의 담화에서 처럼 전교나 선교는 교세를 확장하려는 땅 따먹기 싸움이 아니라 (교회는 선교 사명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보잘것없는 도구이며 매개체임을 상기합니다.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교회, 세속적 성공에 만족하는 교회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몸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이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복음의 기쁨」, 49항)를 우리가 더 좋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선교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떠들썩하게 기쁨 하나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 모두의 몸짓은 분명 하느님을 전하는 손길이었으며 기쁜 몸짓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함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체험하고 그 기쁨의 증인이 되려는데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이 진리임을 굳게 믿으며, 그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 주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게 보여주신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 선교이며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신학은 하느님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 신학은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질서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이 세상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무신론까지 포함합니다. 안 믿는다는 것도 다른 믿음이니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진리는 한 곳에 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옳다고 핏대 세워가며 삿대질로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있다면 그건 선교가 아니라 땅 따먹기 싸움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은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던 한분이신 하느님은 그래서 우주의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웃고 떠들며 선교 바자회를 준비하던 모든 이들의 땀과 웃음은 분명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삶이 기뻐하고, 그 기쁨의 이유가 하느님이라면 우리 모두는 선교사임에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웃음, 하느님의 기쁨, 하느님의 슬픔, 그리고 하느님의 눈물을 보고 있는 우리가 세상에 보여 주는 기쁨과 웃음 그리고 슬픔과 눈물은 그래서 복음이 됩니다.
일주일 내내 성당에 와서 고생하시고 몸의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봉사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열어 제켜 웃을 수 있었고, 기쁠 수 있었던 시간들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함께 하셨던 수녀님, 선교회장님과 사목위원들 그리고 열심히 나와 봉사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들의 땀과 봉사에서 배운 한 마디는
"선교는 기쁨입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