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기사

요즘같이 불경기에 날씨마저 유별나게 춥고 음산하여 모두가 어렵게만 보이는 시간을 살아가려니 따스한 불이되어 이웃을 비춰주던 어렸을 적 골목 동무였던 용집이가 생각납니다.  

그 아이는 환경 탓이었던지 처음부터 책하고는 친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언제나 괜히 근질 근질했는지 툭하면 아이들을 치근거리고 코피를 터트려놓고 해서 속상한 훈육선생님으로부터 학부모를 대동해 오라는 통지서와 정학처분도 밥먹듯 받곤 했지요.

걱겅스런 내가 가까이 다가 가면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괴로워 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앞을 지나던 타교생을 째려본다며 구타하였는데 하필이면 고관집의 아들이었습니다.

용집이는 이제 다시는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는 퇴학처분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상의해서 전학이라도 알아보아야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더니 이 참에 자숙도 할겸 많은 생각을 해야겠다고 하며 한동안 골목에서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지나서 골목에서 혼자 고독을 씹고 있는(?) 저에게 그 아이가 아주 밝은 얼굴로 다가 왔습니다.    
아빠 친구의 주선으로 극장에 영사실에 취직이 되었다고 기술도 배우고 차라리 잘 된 것 같다며 아주 딴 사람처럼 생기마저 돌았습니다.

언제던지 자기 이름만 팔고 들어오면 된다고 하는 바람에 중학생인 저는 일찌감치 영화광이 되는 싹수를 발견한 계기이기도 하였지요.

가끔 교장선생님 이름은 깜빡해도 헐리우드 배우들 이름만큼은 이백명이나 노트에 가득하게 메꾸었다가 들통나서 옆 짝쿵으로부터 너도 영화관 취직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 직장에 신바람이난 용집이는 정말 열심히 배워서 얼마후엔 정식 영사기사겸 조명기사가 되어서 아예 걷는 몸동작까지 의젓하게 변했습니다.

하루는 출근길에 저에게 들려서 숨 넘어가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일류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쇼가 오는데 결코 잊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소식에 저는
두말하면 잔소리 천둥이 치고 벼락이 번쩍여도 나는 그 시간에 극장안에 있으리라고 안심시켜 주었지요.

불꺼진 극장안에 들어가니 무대위에는 당시 유명한 가수들이 번갈아가며 목청을 돋구는데 정작 이 친구는 어디에고 없었습니다.
칠흙같은 극장안을 아무나 더듬으며 헤메는데 어둠속에서 친구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열심히 무대위의 주인공들을 비추느라고 여념없어 몰두해 보이는 친구가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 야, 남들은 열심히 비춰주면서 정작 너는 컴컴한데서 알아볼 수조차 없지 않냐?”
고 했더니 남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밝은 빛을 비추고 있는 자신이 너무 행복하고 자신의 모습은 그 그늘에 감춰 있어도 기쁘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크게 귀담아 듣지는 않았고 그 친구도 당시 그렇게 깊은 뜻으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지나 모든 것이 음산하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 가노라니 그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고 너무나 삭막한 마음이되어 삶의 여정에 서 있는 저에게 곰곰 새겨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듯 합니다.

제 자신은 물론 주변을 돌아보느라면 너무나 많은 이들이 특히나 젊은이들이 남을 밝혀주는 조명기사가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되어 스포트 라이트를 바라며 사는 모습을 접하게 됩니다.
남들앞에서 과잉으로 별난 몸짓을 하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결국 모두 남의 시선이나 관심을 끌어 모아보려는 몸부림은 아닐까요.

남의 시선이나 관심을 끌어보려는 몸짓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긍극적으로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의 아우성이 아니겠습니까?
Egoism 은 날로 번성해가는데 사랑을 나누어 주겠다는 따뜻한 가슴들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결핍증)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어 보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3)

이렇게 어려울 때면 더 움추리게되고 여유도 없어져 이웃에게 마음을 쓸 경황이 없게됩니다. 나 살기도 바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럴 때일수록 훗날 주님앞에 설 수 있게 되기위하여는 늘 깨어 있어야된다.(루까22.36) 고 당부하십니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없는지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시기를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교우님들 모두 기쁜 날 되시고  좋은 꿈 많이 꾸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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