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꼴찌

 

 

 

 

 

첫째와 꼴찌

 

 

세상에서 정의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는 심각합니다. 배운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은 비일비재 합니다. 또한 '갑질'이라 일컫는 힘 있는 이들의 횡포는 사회 전반에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자기 일자리와 삯에 관한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조금 늦은 9시, 어떤 이는

12시에나 간신히 일자리를 얻습니다. 운 좋은 어떤 사람은 오후 5시가 되서야 일자리를 얻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포도수확의 때를 알아야 합니 다. 이스라엘에선 10월 말경 포도 수확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오전 6․ 9․ 그리고 오후 12시와 3시에도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급하면 때에 따라서 오후 5시에 일꾼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우기인 11월이 되기 전에 모든 수확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후 6시경 일몰 시간이 되면 일당을 지불하는데 맨 나중에 와 한 시간 일한 일꾼부터 일당을 지불하는 것이 관례 입니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로마 은전 한 데나리온이었으니 한 시간 일한 일꾼은 12분의 1 데나리온을 받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뜻밖에도 하루치 일당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고용되어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똑 같이 한 데나리 온을 줍니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갑질'로도 보일 수 있는 문젭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도원 주인의 처사는 호의를 넘어 파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왜일까요? 일한 만큼 일당을 지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 5시까지 고용되지 못한 일꾼의 딱한 처지를 불쌍히 여겼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중에 온 이들은 다른 일꾼들보다 더 노약했거나 뭔가 부족해 저녁때까지 품을 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가 한 데나리온을 벌어 와야 하루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을겁니다. 포도원의 선한 주인은 일한 양보다 가련한 노동자의 처지를 알아 차렸고, 이런 분이 자비의 하느님이라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다른 많은 비유와 마찬가지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고 친근한 환경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돌이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산등성이를 중심으로 포도밭들을 경작합니다. 포도를 따서 광주리에 담고, 광주리에 담은 포도를 다시금 포도즙 틀에 넣어 함께 포도를 밟는 수확 풍경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입니다. 모든 추수가 그렇지만 특별히 포도는 정확한 시기를 맞춰 수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도주는 축제와 기쁨을 위한 술일뿐만 아니라 일상의 음료와도 같은 역할을 했기에, 포도 수확은 그들에게 아주 중요 했습니다. 그러나 수확의 기쁨과는 달리 작업 환경은 쉽지 않았습니다. 포도를 수확하려면 낮에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이겨내야 합니다. 일찍 수확해 포도가 설익어도, 늦게 수확해서 너무 익어버려도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수 없기에 정확한 시간 안에 추수를 끝내야 합니다.

 

오늘의 비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포도밭 주인의 밭에서 일할 일꾼들의 고용과 그들이 받을 정당한 삯에 대한 이야기 부분(마태20,1-8)과, 밭 임자의 정당한(?) 지급에 대해 온종일 일한 이들의 불평과 이에 대한 주인의 응답 부분(20,9-15)이 두 번째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비유들이 그렇듯 비유의 뒷부분에 핵심적 내용이 담겨 있기에 후반부 내용에 중점을 두어 보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비유 내용을 살펴보면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 오전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그리고 한 시간 남짓 남은 오후 다섯 시에도 장터에 나가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과 계약하고, 일꾼들을 데려옵니다. 오후 다섯 시에도 일꾼들을 데려왔다는 것은 위에 말씀 언급한대로 수확이 매우 다급한 때였음을 암시합니다. 마침내 해가 떨어져 일이 마무리되고 임금을 지급할 시간에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차례대로 품삯을 지급합니다. 먼저 한 시간 동안 일한 이들에게 하루의 품삯이라 할 수 있는 한 데 나리온을 지급하고, 아침부터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한 이들에게도 똑같이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합니다.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먼저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한 데 비해서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온종일 일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다섯 시에 온 이들은 저녁 서늘할 때 일을 하고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한낮 불볕더위 속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품삯이라니요?

 

사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계약대로 품삯을 지불한 것입 니다. 이는 분명 불의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일꾼들에게 더 후했고,

처음부터 일한 이들에게는 일관성이나 형평성을 보여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의의 차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단순히 정의와 불평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율법학자인 바리사이들은 수많은 율법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 규정을 지켜야만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는 이들이었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 째의 사람들이고, 직업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거나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나 율법규정을 어기는 이들은 당연히 꼴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정의와 공정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자비를 설파하심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공로나 자격 때문에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넘치는 호의와 사랑 안에서 초대받는 하느님 나라! 그래서 오늘 복음은 마지막에 말합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불평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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