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기적
버섯은 건강에 좋은 건강식품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위험한 독버섯도 있습니다. 버섯은 “물 90%이상, 단백질 3%이하, 탄수화물 5%이하, 지방 1%, 미네랄 1%”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1%를 차지하고 있는 미네랄의 특성에 따라 버섯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된답니다. 1% 성분 차이! 독과 약이 되는 이치의 차이가 놀랍습니다.
복음서들은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 부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전합니다. 그 시대 팔레스티나에는 여러 형태의 세례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세례운동의 배경을 보면 당시의 율법은 지키기 까다로웠고, 성전 의례에 대한 유대교 당국의 요구는 지나치리만치 엄격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판명 받고,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진 절망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대의 세례는 흐르는 강물에 사람의 몸을 잠기게 하여 죄를 씻는 의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 실세인 사제와 율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중 안에서 일어난 일종의 신앙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사람들 중 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세례는 다른 세례 운동가들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단순히 죄를 씻는 의례로 세례를 행했지만,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회개, 곧 삶의 전환을 요구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삶을 원천적으로 바꾸 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일생에 단 한번 받는 의식이었습니 다.
오늘 복음은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 하였다.’고 말합니다. (마르코 1,4) 여기서 회개는 자기 삶을 바꾸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던 사람이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그 결심을 사람들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은 "요한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 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1,6)
우리가 아는 대로 소돔과 고모라에의 멸망에서 빠져나오던 룻의 아내는 회두를 하지 않아 소금 기둥으로 변합니다. 이처럼 몸은 멸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만,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회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결국 같은 행동으로 인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여 저지르게 됩니다. 따라서 회개는 회두, 즉 생각의 전환까지 포함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스도 신앙 운동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 안에서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말하면서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요한의 제자들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를 베푼 요한이 세례를 받은 예수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요한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 예언서 (40,3-5)를 인용하여 그 사실을 설명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즉,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주님이시고 요한은 그분의 길을 준비한 인물이라는 해석입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 안에 발생한 세례 운동은 앞서 말한 잘못된 신앙의 가르침으로 생긴 피해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의 자발적 몸부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은혜로운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이는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땅에서도 실천하며 살수 있게 되도록 비는 것입니다. 은혜로움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시고, 사랑하고, 용서 하신다는 말은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들도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녀 된 우리가 아버지를 닮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이 세상을 사는 사람 들이며, 그 하느님의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체 성분의 1%의 미네랄 안에서의 차이가 독과 약이 되는 독버섯의 현실이 섬뜩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 거기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칼처럼 남의 마음을 후벼대고, 싸늘한 눈길이 남에게 모욕감을 주는 폭력이 되어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1%의 의지, 아니, 1%의 건전한 생각이 독을 약으로 변화시킵니다. 1%가 99%를 바꾸어 놓는 이치는 비단 독버섯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다 잘하다가도 하나 잘못되어 일을 그르친 것이 우리 삶 안에서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처럼 단지1%의 편견이나 1% 의 오만이 99%의 선함과 연민을 뒤흔들어 놓기에 우리겐 이 1% 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우리 삶의 단1%의 회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새로운 달력을 배포합니다. 달력을 배포하며 또 일 년이 지나감을 생각합니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는 말씀이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나간 세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흐른 듯 세월의 무정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시는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하는 우리가 우리의 거친 곳, 험한 곳을 찾아내어 평지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1%의 회개이고 그 회개가 결국 1%의 기적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