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5일 연중 제 27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0 5일 연중 제27 주일

까마득히 높은 종탑 꼭대기에서 조각가 한 사람이 돌조각을 하고 있었다. 돌에 꽃잎 하나하나를 아주 정성껏 열심히 조각하는데, 동료 한 사람이 다가와 물었다. “여보게, 무얼 그리 열심히 조각하고 있나? 저 밑을 내려다보게. 사람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데, 누가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라도 하겠나? 대충해 두시게나.” 그러나 조각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밑에서 누군가가 보아주기를 바라지 않네. 내가 열심히 조각한 이 작품을 보아주실 분은 바로 저 위에 계신다네.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루가 16,13)라고 하시며, 약은 집사의 비유와 지난주에 들었던 부자와 나자로에 관한 비유를 후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재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사도들은 의기소침해져 주님께 청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5).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믿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겨자씨만한 믿음도 갖고 있지 않다고 냉혹하게(?) 답변하신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제자들이 생각하는 믿음은 어떤 신통력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행하는 능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마귀의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안다. 돌을 빵으로 바꾸는 초능력,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무사한 초능력, 부귀영화를 사람들에게 주는 초능력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면서 하느님을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 따라 살아야 하고,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하며, 하느님만 섬겨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주신 것은 초능력의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믿음이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복음의 말씀의 핵심이다. 예수님도 돌무화과 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거나 산을 바다에 던지지 않으셨다. 산을 바다에 던진다는 표현은 믿음은 우리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게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장차 역사의 종말에 엄청난 기적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다. 바꿔 말하면, 종말의 엄청난 기적에 비하면 지금의 믿음은 제 아무리 큰 믿음이라 하더라도 한낱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겨자씨만큼 작고, 종말에 있을 기적은 상상하지도 못할 큰 기적의 대조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품삯 꾼은 보수를 요구하지만, 종은 무상으로 일한다. 종은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 부엌일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보수나 사례를 바라지 못한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켰으니 하느님께서 당연히 보상해 주셔야 한다는 당대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다. 곧 우리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1독서는 ""에 대한 예언자의 한탄 섞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주님의 말씀을 입에 담아 전하건만 정작 이루어지지는 않으니 예언자로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에 조롱과 비웃음을 사게 되니 더욱더 그렇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하바 2.3). 주님의 대답은 명확하다. "주님의 때"는 늦어지는 게 아니라 늦어지는 듯 보일 뿐이다.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사실 기다림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상대방이 꼭 온다는 믿음이 있을 때 시간이 늦어져도 기다리는 것처럼, 믿어야 기다릴 수 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과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다.'(2티모 1,13 참조)고 한다. 믿음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꾸며낼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피조물에 불과하고, 종에 불과한 우리에게 품고 계신 하느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옮겨져 형성된 덕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존재를 담고 있어서 그 믿음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된다. 하느님은 살아 계시고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아니 당연히 그렇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지만 오늘날 그분을 믿는다고 미시간 호수에 산이 들어서지 않고, 트럼프 빌딩이 호수에 세워지지도 않는다. 기도해서 불치병 다음날 아침에 낫고 어려운 문제가 그냥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은 초능력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도전과 시련을 받아도 사랑 나눔 섬김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세우신 빵과 포도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의식을 매일 거행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보답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다. 남은 시간 동안 여기서 이렇게 살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유대인들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하느님은 하바꾹 예언자를 통해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하바 2,4)”고 말씀하셨고, 바오로 사도는 이 말씀을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고 해석했다. 믿는 이는 영원히 산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치 않는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그분을 믿고, 믿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나, 그 길을 충실히 따라가면 믿는 대로 된다. 겸손한 믿음으로 "쓸모없는 종임을 고백하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믿음에 보답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