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연중 제 28 주일
고속도로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Driving is a full-time job. Stay safe.” 굳이 번역하자면 운전은 한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니 안전 운행하자는 말일 것이다. 어느 자매가 집에 가려고 신호등 앞 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길에서 빨리 달리던 차가 와서 박았다. 그런데 그 자매의 자동차는 많이 상했지만 몸은 멀쩡했다. 우리의 반응은‘정말 기적이네요.’, ‘하느님이 살려 주셨네요.’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운전을 한다. 그런데 사고도 나지 않았고, 자동차도 멀쩡하다. 어느 것이 더 큰 기적일까? 자동차 사고가 났지만 조금만 다친 것이 더 큰 기적일까, 아니면 자동차 사고도 나지 않고, 다치지도 않은 것이 더 큰 기적일까?”맞다. 우리의 일상 안에는 감사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루 24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공급하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 텐데 우리는 평생 일분일초도 거르지 않고 이 산소를 거저 받아먹으며 숨을 쉰다. 이 역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유럽 대륙을 정복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내가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고 한 반면, 극심한 신체장애자로 태어나 장애를 극복하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던 미국의 헬렌 켈러는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감사할 줄 모르면 행복할 수없는 이유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병환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1 독서에서는 나아만이라는 시리아 장수가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가 알려준 대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복음에서는 나병환자 열 사람을 치유한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1 독서에서 이스라엘에도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나아만이라는 이방인만 치유되었고, 복음에서는 열 명의 치유자 중에서 이방인 하나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오늘 제1독서(2열왕 5, 14-17)에서도 나병을 앓고 있던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이 자존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서 일곱 번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어 새살이 돋아 그의 몸은 마치 어린 아이 몸처럼 깨끗해진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리사에게 선물을 드렸지만 엘리사가 사양하자 "이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아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며 맹세한다.
제2독서에서는 감옥에 갇힌 사도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복음의 능력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자유롭고 한계를 모르며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가 그 말씀을 믿을 때 말씀은 우리가 처한 어떤 극한의 상황도, 비참한 처지도, 막막한 현실도 녹여내고 건너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 분의 성실함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야 말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비록 나병에 걸린 사람은 아니었지만 교회를 박해한 중죄인(사도 8, 1-4참조)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마스커스로 교회를 박해하러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이 영적으로 중병임을 알게 되었고 또 아나니야의 도움으로 실명했던 눈의 치유를 받게 된다. (사도 9, 1-19참조) 그 후 사도 바오로의 선교와 전교여행은 한마디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감사의 마음은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라고 고백하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성실함을 믿음으로써 치유를 얻고, 감사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단언컨대 우리 중 누구도 치유와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은 나쁜 사람들이고, 돌아온 한 사람만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 정도의 교훈은 이솝의 우화들 안에 얼마든지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하느님을 가르치셨다. 오늘 복음은 치유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는 모습과 흡사하다. 오늘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베풂을 받은 열 사람이지만,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고, 그분을 찬양하고 그것을 배우려 나선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10명을 다 고쳐주셨다는 말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은혜를 이미 다 주셨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자명해 진다. 감사! 감사가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기에 감사할 수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과 같다. 감사하면 이미 받았다고 믿는 것이기에 사실 하느님께서 청하지 않는 것까지도 다 알아서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려주실 때 아버지께 이렇게 청하신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1,41-42) 이처럼 예수님은 청할 때 감사기도를 먼저 드리신다. 이미 청한 것을 받았다고 믿으시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이야기의 결론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느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이신지를 깨닫고, 예수님에게 돌아와 감사드리는 믿음을 가지는 우리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