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26일 연중 제 30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0 26일 연중 제 30 주일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바리사이는 말씀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던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신앙적으로 경건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다. 불의도 저지르지 않았고, 강도짓이나 간음도 하지 않았으며, 소득의 십분의 일을 율법에 따라 철저히 바치는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는 이 골치 아픈 반발 세력의 기를 꺾고 로마에게 아부하는 세력은 뒤를 봐주기 위해서 과도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 정책에 동원된 사람들이 세리였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국세는 직접 걷어 갔지만 지방세는 세리들에게 맡겼다. 세리들은 일정액만 로마에 바치면 되었기에 백성들에게 사기치고 협박하여 더 많은 돈들을 거두어갔다.

그래서 누가 봐도 바리사이와 세리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비교조차 거북한 이 두 사람이 자비의 하느님 앞에서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죄인인 세리가 올바른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의 기도는 이 한마디였다.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변명이 아닌 부끄러움의 고백이었기에 하느님께 달리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었던 것이다.

한 바리사이는 "기도하였다"고는 하지만 마치 '잘한 일 발표하기' '참 잘했어요, 동그라미 세 개!'를 듣고 싶어 하는 어린애 같다. 바리사이의 기도를 보면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보란 듯 자랑하며 기도한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임에도 하느님 앞이 아니라 자신 앞에 서서 자랑한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제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8,11) 그의 기도엔 청원도 찬미도 없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요란한 징 같은 자기 자랑이었다. 그는 실상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를 들어 높이는 자랑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기도는 혼잣말도 아니고 이웃과 나누는 수다도 아니다. 대상이 있는 대화다. 그 대상이신 분은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아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런 분 앞에서 사람이 내세울 게 무엇이 있을까? 

1독서에는 주님께서 귀를 기울여 주시는 이들이 가난한 사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 고아, 과부,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 겸손한 이, 의로운 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정의나 진리마저 부와 권력이 좌우하는 세상의 이익에서 제외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애써 낮출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이미 낮을 만큼 낮아져 바닥을 친 이들, 더 내려 갈래야 내려갈 곳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그저 자기 앞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인정하면 된다. 사실 진실한 기도는 거기서 나온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복음 때문에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던 순간을 토로한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가장 고독했던 그 순간에 사도 바오로가 기도 상태에 있었음을 이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주님은 그가 가장 가난하고 외롭고 벌거벗고 나약했던 순간에 그의 존재 안에 현존하시며 힘과 위로와 용기가 되어 주신다. 주님의 성실한 사랑은 그가 승승장구할 때보다 비참했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한다.

 

이런 약함이 없었다면 주님과 사도 바오로의 관계는 열혈 유다교 신봉자였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그는 성전에 올라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혼잣말로 공치사나 중얼거리다 내심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비유 속 바리사이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눈멀고, 헐벗고 배척당하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짓밟히면서, 주님의 자비를, 아니 구원을 쟁취한 것이다.

기도는 나와 너(당신)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인지, 당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당신 앞에 나는 누구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기도할 수 있다. 은총을 입은 죄인이라는 자기 실존과, 죄인임에도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당신의 존재를 깨달은 영혼은 주님 앞에 꼿꼿이 서서 영혼 없는 혼잣말을 할 수 없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세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세리가 가졌던 감히 하늘도 우러러 보지 못하는 절실한 마음이었는지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 안에서 끊어야 하고 버려야 하고 피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끊고 버리고 피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짐 해봐도 실천이 쉽지 않다. 과연 우리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세리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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