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대림 제 2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2월 7일 대림 제2 주일

지난주일 신자들이 아침 일찍 성당에 와 눈삽 들고 눈 치우는 모습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어느 성당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마치 오늘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응답하여 눈을 치우는 모습인 것 같아 감격스러웠고 내가 이런 성당의 본당신부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 오심과 다시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제2주간을 맞이하면서 대림환의

두 번째 촛불을 밝혔다. 오늘 대림 제2주일의 말씀주제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직접적인 약속으로서

이사야의 예언(40,3-5)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그가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대림시기가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긴장, 단식과 고행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막연한 기다림이기보다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쁨과 희망으로 준비하는 충실한 기다림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들려준다. 잘려 말라죽은 그루터기는 다윗 왕조의 죄와

불충을 상징한다. 바로 이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는 것은 거저 주는 생명의 시작을 나타낸다. 햇순은

은총이고 하느님의 선물이다. 영의 선물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지혜와 용맹과 사랑의 영으로 채워 준다.

메시아께서는 주님의 영을 받아 무엇보다 힘없고 가련한 이들을 위하여 놀라운 구원의 활동을 펼치신다.

메시아 나라는 긴장과 적대 행위가 없고 평화와 일치만 있다. 이런 이사야의 환시는 우리 마음을 희망과

기쁨으로 채워 준다. 메시아의 도래와 메시아가 인간들 가운데 성취시킬 ‘변화’의 놀라운 위업을

예고하고 있다. 그분은 정의를 다시 세우실 것이고,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 ‘평화’를 다시 이루어주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영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이같이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시적 표현을

통해 인간들 사이에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 쇄신과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전환시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서를 증거로 내세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화해시켰는지를 상기시키면서(로마 15,4-9), 이 어리석은 인간의 역사가 그 의미를 되찾고 사랑의 역사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야 하며, 반드시 다시 오셔야 한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고 있다.

요한세자가 알리는 그 시작이 오늘 복음에서는 막연히 ‘그 무렵’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역사 속의 어느

때든 마음먹는 때, 필요한 때, 그래서 오늘 복음이 성탄과 또 미래에 있을 재림을 준비하는 모든 이를

향한 복음이 되게 만든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출현하는 ‘그 무렵’은 결국 ‘광야’라는 장소와 잘

어울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의 도래와 메시아의 행차 길을 닦으러 오는 특사가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고 믿었다.(말라 3,1) 그런데 그가 궁궐이 아닌 광야에 나타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광야에 사는 이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먹는 음식은 광야라는 곳에서 조달된다. 바로 낙타털 옷과 가죽띠,

메뚜기와 들꿀이 그것이다. 요한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든 간에 그것이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와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선포의 메시지는 바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도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해 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직업상 율법을 통해 남들의 죄를 판단하고 단죄를 하는 사람들로서 행여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요한 세례자는 이들을 보자마자 대뜸 ‘독사의

족속’이라고 비난하면서 화를 피하려면 “우선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다. 이 말에

그들 대부분이 매우 당혹스럽고 불편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미 율법대로 잘살고 있는데 뭘

회개하라는 것인지 서로 묻기도 하고 일부는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만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깊이

의식화되고 습관이 된 신자일수록 회개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리고 세상의 죄악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들이 문제이지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지적질’이고

제일 어려운 것이 ‘회개’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도 이 회개를 아주 소홀히 하고 있다.

우선 죄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기도 하고, 끝없는 변명으로 죄를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회개에 따르는 그 은총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대림 시기 동안 우리는 우선 회개로 시작하여 완고해진 우리의 마음을 비워 놓고 주님을 맞이하도록 해야

하겠다. 그래야 세상 것으로 힘주던 우리가 겸손으로 낮아지고,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달을 때, 그

마음속에 주님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겠다.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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