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5 18 부활 5 주일

신부님, 첫사랑 얘기 좀 해주세요. 왜 신부가 첫사랑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궁금한지 모르겠다. 가슴 설레던 사랑의 감정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신부가 될 생각이 애초에 없었기에 평범한 사람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도 첫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포근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안 하고 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첫사랑의 이야기 모두가 소설 같은 이야기는 못되겠지만, 어찌 사람이 처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해보고 싶은 간절함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선포 하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말씀 하시는 사랑은 말로는 하기 좋지만, 실제 사랑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랑을 타인의 행복을 원함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곧 사랑은 내 뜻을 이뤄내려는 고집이 아니라 네 뜻을 이루어 내는 배려요, 따뜻함이다. 내 만족을 찾는 욕망이 아니라 위타적 (爲他的)이며 몰아적 본질을 지닌 내어줌이다.

하느님 나라는 내 만족과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은 죽음을 가져오는 사랑 즉 "죽기까지 사랑하신 삶"이었다. 힘 있는 이들과 타협하거나 불의에 굴복하지 않으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랑의 오류가 많다. 위대한 미국이 되기 위해서 남의 나라에게 관세를 올려 받아 부강하게 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크다. 오히려 고립된 정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만족이 너의 기쁨이 되도록 한다면 폭력이 되고, 나의 기쁨이 너의 만족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은 횡포다. 세상 안에 폭력과 테러로 시끄러운 이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바는 이룰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 세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들은 제 2 독서인 묵시록은 변화한 인류가 자기를 만들어 낸 창조주와 더불어 올리는 결정적인 결혼식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결혼은 사랑의 정점이 아닐까? 새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날에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신랑(하느님)께서 올바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 줄 것이다. 그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죽음과 슬픔 따위의 고통을 없애 주실 것이다. 그 날 인류는 영원한 젊음으로 빛날 것이며 더 이상 늙지 않을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의지를 밝히신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 곧,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새로운 계약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는다. 사랑하라는 것이 새로운 계약의 주요 골자다. 사랑하라는 그 계명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쉬운 말로 죽도록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아끼고 섬기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복음은 늘 우리게 도전을 불러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는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따라 제 2독서의 묵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그 순간에 우리는 "통곡하며 이를 가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새 하늘, 새 땅에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될지 가름 되어질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삶은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지만,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말씀이기에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임에는 분명하다. 사랑! 말하기는 쉽지만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게 복음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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