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4일 연중 제 21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8 24일 연중 제21 주일

야구를 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은퇴한 유명한 야구 선수들이 모인 야구팀과 다른 유명한 야구팀이 경기를 하는 것인데 요즈음 한국에서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이 연습할 때 친 공들을 모아 박스에 넣는 볼 보이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800 1의 경쟁이란다. 볼 보이 되는 것도 800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엄청나게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대답 하신다. “좁은 문”이란 말마디가 목에 가시 모양 갑갑하고 조금은 답답하다. 꼭 이렇게까지? 구원받는 것까지 무한경쟁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왜 '무한경쟁'에 가슴이 뜨끔할까? 어릴 적부터 경쟁에 길들여 왔던 우리다. 남들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더 좋은 학교를 원했기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엄청난 경쟁률에서 살아남은 우리다. 그렇게 안간힘을 쏟아 부어 살아온 우리들에게 좁은 문은 너무나도 익숙하면서 지긋지긋하기만 한 경쟁의 문이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도 ‘좁은 문’을 챙겨야 하다니 쉽지 않다. 행여 신앙생활도 나의 구원을 위해 다른 이들을 물리쳐 이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일등 학교, 일등 직장을 향한 ‘좁은 문 ’과 구원의 ‘좁은 문’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일등 학교, 일등 직장은 모두가 절박하게 원하기 때문에 그곳을 향한 문은 ‘실제로’ 좁지만, 그와 반대로 구원을 향하는 길을 ‘정말로’ 충실하게 걸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주 넓을 수 있는 것이 구원의 좁은 문이다.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면서도 구원을 받겠다고 외치는 이들이 너무 많을 것 아닌지 생각해 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보인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문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마치 우리의 목소리 인듯하다. 아니요, 저희는 주님을 잘 압니다. 저희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저희 성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스스로 선택됐다는 우월감으로 좁은 문에 서 있던 자들은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렇게 좁았던 문이 어느새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는 큰 문으로 변하는 장면을 오늘 복음에서 만난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1독서에서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이사 66,18)라고 한 주님의 말씀처럼 모든 이에게 하늘나라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런데도 ‘자신들만’ 초대됐다고 여기는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위해 그 문을 스스로 좁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들이 결국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든 원인이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던 문을 좁은 문으로 만든 자들은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하신 말은 하늘나라의 문이 힘든 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좁은 문은 하늘나라에 들어는 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백성 혹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말씀도 듣지 않고, 듣지 않으니 실천은 더 어려워 점점 멀어지던 하느님이 이제는 보이지조차 않으니 스스로 좁은 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초대된 수많은 이방인들의 널찍한 문과 어렵게만 보이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란 우리에게 결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구원의 길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넓은 길인데, 하늘의 법이 멀리 있다고 하지 말고 가까이 있음을 우리 마음 우리 손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 좁은 문은 이미 넓혀져 있지 않을까 싶다.

 

좁은 문은 무작정 어려운 문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만 실천해도 되는 이 길이 언제부터 가기 싫어하는 고지식한 길,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진짜 좁은 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해서 원래 큰 대문 드나들듯 쉬웠던 이 길은 나만 찾는 이기심으로 인해 좁은 문으로 변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마시며 그분을 잘 안다고 자랑해도, 그저 나만 고집하는 아집에 사로잡혀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는 욕심 가득한 뚱보가 되면 문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바로 회개를 통해 용서의 은총이 작은 변화이며 우리에게 허락된 넓은 문이다. 첫째인 우리가 꼴찌가 되는 불행을 겪지 않는 지혜로운 우리였으면 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