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한국 순교자 대축일 (본당의 날)
K Pop, K 화장품, K 음식, K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바로 한국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신앙은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신앙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스스로 신앙을 찾아 나섰고, 천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자기 자신마저 기꺼이 버렸다.
남녀차별이 있던 조선 시대에 천주교를 믿는다고 여자가 끌려오니 관장이 “너는 왜 왔느냐?” 라고 묻는다. 여인은 조용히 “저 또한 천주님을 믿는 사람이니 국법대로 다스림을 받으러 왔습니다.” 관장이 언짢은 목소리로 묻는다. “네가 믿는 천주가 도대체 어느 책에 적혀 있느냐?” 그러자 여인은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하고 대답한다. 관장은 글도 모르면서 국법을 들먹이니 화가 나서 “글도 모르는 게 뭘 안다고 천주를 믿느냐, 너는 천주를 본 적이 있느냐?”하며 다그친다. 그러니 여인은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니 “글로 아는 게 있나, 본 적이 있나, 도대체 너는 무엇을 가지고 믿는다고 큰소리를 치느냐?"하고 호통 치자 “나리,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말아 야 할 것으로 말한다면 저는 이 나라의 임금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나리님을 보내셔서 오셨기에 저는 임금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있는 걸 보고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의 순교자들은 진정 주님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셨던 분들이셨다. 그분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비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교자들은 끊임없는 고통 중에도 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해 내셨고, 그 사랑으로 희망을 사셨던 분들이셨다.
이를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전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 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
오늘 예수님을 향해 오직 한마음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의 삶에는 세상의 가치, 세상의 잣대도 있었겠지만 과감히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향한 열정이었다. 인간적 기대에 삶의 목표가 있지 않았고 오히려 고통을 감수하며 죽음 앞에서도 주님을 향해 웃음 지었던 순교자들의 후예 답게 십자가의 삶을 우리도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즉 주님을 따르는데 역행하는 요소가 나에게 어떤 것이 있는가?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의 나약한 면을 과감히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는 삶이 바로 그들의 순교정신을 본받는 것이며, 순교자들을 올바로 기리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순교정신을 되살려 순교(martyr; 증거)라는 말 뜻 그대로, 우리의 삶의 현장이 신앙을 증거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일은 우리 순교자의 후예라면 살아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 순교자 천주교회! 한국 순교자를 주보성인들로 모신 우리 성당의 본당의 날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당다운 것은 무엇일까?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 없이 자생으로 태어난 세계 유일의 교회라는 점과 갓 태어난 신생 교회는 곧바로 수없이 끔찍한 박해를 굳건히 이겨냈고, 짧은 세월 안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장한 순교자들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우리 성당도 신자들 스스로 성당을 일구어 냈고, 물 설고 말 설은 미국으로 이민을 와 그 많은 어려움과 혹독한 현실 안에서도 하느님을 잃지 않고 짧은 세월 안에 세 개의 성당으로 발전(?) 했고 시카고 순교자 성당 하면 시카고 한인들의 이민 역사에서 큰 이름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의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 사랑을 살아내는 우리 공동체가 어찌 하느님의 사랑을 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는 자랑스럽게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장하다 순교자 성당 주님의 용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