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 ‘하느님의 아들인 나도 세례를 받았으니 죄인인 너희들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며 본을 보이기 위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태어나신 지 삼십 년 뒤의 사건이다.
그러함에도 교회가 삼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세례사건을 성탄시기에 경축하고 있음은, 성탄과 세례가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태어나심, 즉 성탄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
내디뎌야 할 발걸음이 있었는데 그 발걸음의 시작이 바로 세례였고, 그러기에 세례는 성탄의 완성이 된다.
세례자 요한이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과거의 그 어떤 전통에도 없는 세례를 요르단 강에서 베푼 이유는
죄인을 용서해 주기 위함이었다. 있으면 용서받고, 없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당치도 않는 율법규정에 의해
구원받지 못했던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요한은 세례를 베풀었던 것이다. 이제 죄인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 길게 늘어선 죄인들 틈에 같이 줄을 서신 것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줄을 서신 것이 아니라,
줄을 선 죄인들과 같아지기 위해 줄을 서신 것이다. 세상과 당신 자신의 완전한 일치를 위해 줄을 서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상일에 섞어들어 세상의 죄인들과 어깨를 마주 비비며 살겠다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예수님의 의도적인 결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세례를 받으심으로, 세상의
혼탁한 진흙탕 물에 발을 담그심으로 참 하느님의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신 것이다.
주님의 세례는 그분의 공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려주며, 우리 세례를 계시해 주는 성령의 장엄한
축복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새로운 세례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하늘의 소리로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계심을 믿게 하셨나이다. 또한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감사송)
공생활의 시작은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세례사건에 이어
곧바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다.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펼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유혹과 반드시
부딪쳐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신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성사이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너무 명확한 진리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지만,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일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순종’하며 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기에 오늘 제1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종”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제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 사람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초부터 감추어진 하느님의 신비가 드디어 밝혀진다. 당신의 생명을 피조물들과 나누고자 했던 하느님의
큰 뜻이 드러났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낮추시면서 까지 당신의 피조물들과 함께 하고 싶으셨다.
당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면서까지 사랑하고자 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우리와 같아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던 말씀이 여기 이 땅에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창조된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 생명의 주인이 피조물이 되어
오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 되어 오셨다. 사랑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사랑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람이 되셨다.
지난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오늘 주님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정체가 또다시 공개된다. 목동이나
동방에서 온 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하늘에서부터 직접 음성이 들려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 하느님의 생명을
간직하고자 기꺼이 사랑을 선택할 줄 아는 이들, 사랑하기에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는 모든 사람의
아들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는 오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이 작아짐으로 우리 이웃이 커지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 사실 안에서 이웃 안에 머물러 계신 그분이 커지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여 진
유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 되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내는 믿는 이들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