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요즈음 엄마들의 스타는 임 영웅이라는 가수다. 잘 생기고 노래도 잘하니 인기가 많다. 손 흥민도 스타 중의 스타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 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박사의 별이다. 우리 모두는 별 하나는 가질 필요가 있다. 별 볼 일 없는 별을 쫒으면 그게 섬겨서는 안 될 우상숭배가 된다.
요즈음 나도 별 볼일 없이 산다. 분명히 시카고 하늘에도 별은 뜨지만, 하늘을 우러르지 못해 별 볼일이 없다. 하늘에 있는 별을 땅에서 찾을 수 없듯 세상일에 몰입되어 땅만 바라보고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이들에게는 별이 보일 리 만무하다.
공현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고 ‘황금,유향, 몰약’을 선물로 받았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구세주가 아니라, 이민족 모든 민족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동방박사들을 떠나게 만든 것은 별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믿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갈증이 믿는 모든 이들의 마음 안에 솟아나게 해야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확증하기 위하여 족보와 탄생 경위에 이어, 곧바로 강생구속 사건의 사실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태오는 동방 박사들을 등장시키면서 이렇게 시작된 구원역사가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오히려 이방인인 그들의 지식과 지혜가 편협한 민족주의와 선민사상에 묶여있던 이스라엘을 넘어 온 민족의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해 알려줄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외면하였고, 먼 이방에서 사람들이 찾아 와 그분을 경배했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동방박사(이방인)의 열망과는 달리 헤로데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동방 박사들이 여정을 거의 마칠 무렵까지 헤로데는 잠들어 있었기에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 역사를 뒤바꿀 새로움에 직면했을 때 혼란스러움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헤로데의 모습에서 앞으로 벌어질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짐을 보게 된다.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화와 새로움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간교한 계략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동방 박사들이 익숙했던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별을 좇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앎을 믿음으로, 믿음을 행동으로 연장시키는 분별력과 결단,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 그 빛(이사 60,1.3)이 비춘다. 너의 빛 즉 예루살렘의 빛은 예루살렘만의 빛이 아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제게 비추는 빛을 자기네 것이라고, 나아가 자기네가 마치 빛인 양 생각하더라도, 말 그대로 착각일 뿐, 빛은 곧 하느님 한 분 뿐이시다. 이제 이빛이 나에게도 비친다. 우리에게도 비친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사 60,1) 별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기심과 헛된 망상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인다. 초라하고 고통스런 약자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한다. 찾겠다는 마음과 그것을 좇아 떠나겠다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온상을 떠나는 것이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듯이 우리게도 수많은 욕심의 별들이 함께 떠 있다. 화려한 왕궁처럼 재물이나 지위가 꾸며주는 화려한 별은 하느님의 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나은 지위를 얻어, 우월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화려한 별도 말씀의 별이 아니다. 말씀이 초라한 구유에 한 아기의 연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음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 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 길을 가는 우리가 무슨 별을 봐야 하는지 알려 주는 말씀이다. 어두운 밤에 별이 빛나듯, 초라하고 고통 당하는 약한 이웃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사라진다. 초라한 사람들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우리가 살듯 우리의 보살핌의 마음 안에서 별은 빛나고 주님의 말씀은 살아계신다. 그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황금(재물)과 유황(기도)과 몰약(자기죽음)이다.
올 겨울은 유독 더 춥게 느껴진다. 세상은 정치색깔 좌와 우로, 가난과 풍요로 얼어붙지만 우리 마음을 얼지 않아 따뜻하게 주님을 감싸 안는 우리였으면 한다. 나는 지금 어느 별을 쫓고 있는가? 아니 나는 지금 별 볼일 없이 사는가 아니면 별을 보고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