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일 연중 제 4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2월 1일 연중 제 4 주일

 달에 한 번씩 사제들이 모인다. 서로 모여서 식사도 하며 친교를 나누는데, 그날은 내가 대접할

차례였다. 처음 생각한 것 보다 많은 사람이 와서 조금 부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음식을

먹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돈을 내려고 호기롭게 지갑을

꺼내서 카드를 내려는데, 식당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저쪽에 계신 분이 다 내고 가셨어요.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른다. 그 행복감이 오래가면 좋겠는데, 저녁이 되니

벌써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행복은 잠깐 느끼는 포만감 같은 것일까?

저 집은 잘 사는 집이에요 라는 말을 들을 때 잘 산다는 것이 돈이 많다는 뜻인가 아니면 진짜 잘 사는

집인가 헷갈린다. 잘 사는 집은 부자만 되면 잘 살고 행복해진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부자가

된다고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인기 연예인이나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

큰 권력에 오른 정치인들 역시 인기나 돈, 권력 그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편견에 불과하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행복은 세속적인 기준에 따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다.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 박해받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른바 착한 사람들,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보면서 과연

그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세상은 무언가를 채울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갈망을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하신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신다. 하지만 가난 그 자체는 분명히 치워져야

할 악이다. 그리고 그 가난을 하느님의 뜻도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을 차지하는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히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를 뜻한다. 이들에게 하늘나라가 주어진다.

슬퍼하는 사람이 왜 행복할까? 자신의 죄와 세상의 아픔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하며 하느님의 위로를

구하는 상태를 말한다. 길거리에서 ICE의 총에 죽어가는 이웃을 보면서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고,

내 문제가 아니니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한 역설적인 이유는, 그 슬픔이

단순한 감정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과 위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 행복은 고립된 개인의 수양에 머물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여기며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이들로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된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적극적으로 화해를 도모하고 하느님의 질서를 세우는 이들로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될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가식 없이 순수한 지향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대하는 이들로서 결국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정말로 역설적인 것은 박해와 모욕 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진리를 따르다 겪는 고난은 그 자체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증표가 된다. 해서

예수님은 이런 이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모욕과 박해의 고난의 순간에도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다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산상 설교의 참된 행복은 현실의 역동성 안에 드러나는 것이지, 미래에 막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행복의 조건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말한다. 지상에서 가난한 마음, 겸손의 영을 지니는 사람이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의 밑바닥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유함과 의로움과 자비로움, 깨끗한 마음 안에서 주어지는 예수님의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자녀의 삶 속에 불멸의 평화가 가득 차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다가

어려움이나 박해를 당할 때, 우리는 불사불멸의 즐거움, 영원한 상급의 전조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참 행복의 선언이 어떻게 내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오늘 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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