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 사순 제 2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3 1일 사순 제2 주일

오늘 독서와 복음의 핵심은 '동전의 양면' 같은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려한 영광 뒤에는 항상 그만큼의 무게가 따른다는 인생의 교훈 혹은 신앙의 신비를 말하는 듯하다. 오늘 복음에서 높은 산에 오르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5-16)라고 대답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정말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은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새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반복하시자 (16,21), 제자들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목격한 장면, 즉 높은 산에서 예수님께서 빛처럼 귀하게 변하신 모습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베드로에게 그럼 그렇지! 하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 했고, 순간 들뜬 마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17,4). 베드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와 모세에게 거는 정치적, 종교적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예수님께서 백성들이 바라는 영웅적이고 화려한 인물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속내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하늘의 소리가 들리면서 베드로의 환상은 깨진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이것은 너희의 환상과 기대를 위해 그곳에 초막을 짓고 머무를 것이 아니라 즉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부활을 향한 수난 속에 자신을 던질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명령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고, 산 아래 지상의 삶에서 각자가 수난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음을 읽으며 그려진 그림은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으로 제자들은 흥분했을 것이고, 그 반대로 근심이 되기도 하는 양쪽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모세와 엘리아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언서를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인 동시에 혹독하게 그 대가를 치르며 하느님을 증거 한 대표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할 술 더 떠서 "사람이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 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당신의 죽음을 또 한 번 언급하시며 방금 체험한 신비경에 찬물을 끼얹으신다. 마치 상승과 하강의 차이가 롤러코스트 급이다.

 

1독서는 아브람을 부르시는 내용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이 얼마나 큰 복일까? 누구라도 그 자신이 모든 이의 복의 근원이 된다면 놀랍고도 영광스러울 것이다. 아브람은 원래 하란에 몸 붙여 사는 이방인에 불과했고 자손도 없는 처지였다 (창세 11,27-32 참조). 그런 그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하신다. 그 영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익숙하고 안정된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현재의 안정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이지만, 미래의 복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모험이다. 익숙한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지만, 그 리스크 없이는 구원도 없다. No risk, no gain이라 하지 않던가?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복음의 양면성을 솔직히 드러낸다.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바로 돌직구를 날린다. 감언이설로 상대를 안심시키거나 착각하게 만들지 않고,복음을 믿고 수호하는 길은 고난의 길임을 분명하게 전한다. 하지만 바오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 희망을 환희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10) 마치 복음의 "빛나다"라는 반복된 표현을 반사하듯 제2독서 안에 두 차례나 반복된다.

 

인생은 아니 신앙생활은 '단짠단짠'의 반복인 듯하다. 우리는 기쁨만 선택하고 슬픔은 버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이 둘은 '개별 포장'이 안 된 세트 상품이다. 그래서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으며, 영광의 얼굴 안에는 십자가가 숨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금 인생의 정점에 서서 '초막'을 짓고 싶다면, 혹은 고난의 계곡에서 '어둠'뿐이라고 절망하고 있다면 기억해야 한다. 진짜 영광은 화려한 산 위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 내려온 '치열한 일상' 안에서 완성된다. 십자가라는 고난의 뒷면엔 이미 '부활'이라는 영광이 인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기쁜 일이 있다면 그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혹시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 너머에 있을 빛나는 부활을 희망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빛과 어둠을 통째로 종합선물 세트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신앙은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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