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것이 바로 큰 것의 시작 )
언젠가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현관게시판 앞에 할머님들이 둘러서서 웅성거리며 아주 걱정스런 표정들이 되어
서로 바라보며 수근수근하고 있었다.
나도 그 웅성거리는 틈에 한몫 끼어들면서 뭣 때문에들 그러느냐고 말 대신 궁굼하다는 표시로 어깨를 으쓱했더니
눈치 빠른 한 할머니가,
‘ 아따 이 사람아 물어볼 꺼 뭐 있어? 저 게시판에 써 있는 걸 네가 들여다 봐.’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딱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 내일 아침부터 열흘동안 엘레베타 운행정지 )
이유는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그것도 낡아서 대대적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 이 아파트에 사시는 당신들이나 이 엘레베타도 늙고 낡으면 어쩌는 수 없지요.’
이런 문구는 써 있지는 않았지만 그게 그 소리였을 테지.
나는 이제 그 할머니들 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그 틈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냥 서 있어서 될 일도 아니니 어쩌면 좋은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15 파운드짜리로 샀던 쌀도 아직 8 파운드쯤 남아 있고,
한병만 사면 군내가 나도록 먹어도 석달 이상 먹는데 김치 산지가 두달밖에 안 지났으니 열흘 쯤이야.
그래도 살아있는 삶이니 나가야 할 일도 있을 텐데 방안에서 열흘 동안 계속
개똥철학만 하고 지낼 수는 없지 않겠나 싶었다.
이 아파트에는 지팡이에 의존하여 걷는 이도, 보행보조기를 끌며 걸어야 하는 이도 또 윌체어에 앉아서
다녀야 하는 이들도 수두룩한테 그 이들은 나가야 할 일 생기거나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편물이라도
꺼내가려면 어쩔 건가? 보통 일이 아니라 싶었다.
우편물 때문에 도와주진 못해도 병원에 가야 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땐 소방소나 경찰서에 연락하면 도와주러 올 것이라고 그 아래에 써 있었다.
아 !
난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내일 일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내 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건강을 지금까지는 갖고 있으니.
” 감사합니다, 주님. ” 절로 기도가 나온다.
( 있을 땐 몰라도 없어 보면 그 큰 빈자릴 알게 될 꺼야. 그러니 있을 때 잘해. )
보통 이런 말을 흔히 하고 또 많이 듣는다.
오늘은 사람 얘기가 아니고 기계인 엘레베터 얘기지만 뭐든지 없어보아야 아는 가 보다.
( 오늘의 운수 ) 그런 걸 본 일이 없으니 나 한테 (역마살) 같은 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는 없어도
집에 하루도 그냥 안 있고 , 난 엘레베타가 있었을 때도 집에서 5 마일 범위안에서 나다니길 좋아했지만
기게가 고장났다는 구실로 열흘이나 방안에 있으라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데, 어쩌나?
그렇구나.
난 아직도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다고 했었지? 감사기도 까지 하고선…
아침을 대충 먹고 걸어서 내려가 보았다.
별 것도 아니었다. 안 하던 콧노래 마저 부르며 한 계단 씩 세어가며 내려갔다.
Oh, Ya. It was so easy. Just like a peanut for elephant.
볼 일을 다 보고 현관에 들어서면서야 엘레베타가 고장인 걸 깨달았다.
난 일층도 아니고, 삼층도 아닌 옥상 바로 밑, 오층 옥탑방에 산다.
도리 없이 층께 앞으로 갔다. 아까 내려 올 때 80 계단 인 걸 세었었다.
Oh, my God !
어쩐지 아까 내려가면서 까불더니.
일층까진 그까짓 꺼, 이층부턴 조금씩 허리에 신호가 오더니 삼층에서 쉬고 사층도 쉬고 오층 방 열쇠를 열며
거친 숨소리가 나고 목소리가 쉰 소리까지 하며 야단도 아니었다. 한참 씩씩 거렸다.
그렇다고,
다 고칠 때 까지 집에 있다는 건 No way.
오기가 나서 또 하루도 안 빠지고 걸어 내려가고 또 걸어 올라왔다.
이젠 중간에 잠까만 숨을 고르고 바로 올라와 그렇게 거친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엘레베타를 다 고쳤다고 할머니들이 이젠 살았다고 만면에 웃음을 띄웠지만
난 손에 무거운 물건을 들었거나 특별히 피곤하지 않으면
엘레베타보고 나 때문에 수고하지 말고 쉬라고 인심까지 쓰며 걸어 오른다.
까짓 걸어다닌 게 뭐 대단한 사건이라고 이렇게 길게 써 가면서 난리였냐고 물으실까 봐,
걸으면서 혼자 생각했던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라고 변명까지 마련했다.
80 계단을 오르려면 반드시 한 계단씩 거치며 올라야만 한다.
설사 내가 힘이 좋아 한 계단을 건너 뛰었다고 해서, 아니면 헬리콥타로 한 계단도 밟지 않고
날아올랐다 한대서 , ” 난 계단을 밟지도 않고 올랐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발로 밟지만 않았을 뿐 그래도 층계를 하나씩 거쳐서 오른 것이다.
비록 ( 계단오르기 ) 뿐이랴.
무슨 일이고 또 어떤 일도 시작은 가장 낮은 데서 시작될 것이고 또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한 단계씩
올라 높은 곳을 향하고 또 큰 것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런 진리를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또 몸소 실행해 보였던 많은 훌륭한 이들 중에는,
소화 데레사, 마더 데레사 그리고 쟌 다르크( Joan D’Ark), 그이들이 생각난다.
성녀, 소화데레사는 두드러지게 큰 업적도 또 그런 기적도 보여주지 않았고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성녀는 그 짧은 생애동안 삶 속에서 아주 작은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행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그런 작은 일들이 바로 이웃에 감명과 감동을 주고 은혜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찾아 가장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나 가장 낮은 데서
머물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행하여 저 높은 곳을 지향하였을 것이다.
쟌 다르크.
그 소녀는 아주 왜소하여 연약한 여인이었으며 또 이제 아주 어린 16 세의 어린 소녀였다.
가진 것도 없었고 물론 힘도 없었다.
자기의 조국 프랑스가 사람들이 분파를 이루고 분란하여 나라가 지극히 혼란스러워 큰 위기에 빠져 있었을 때
그 연약한 소녀는 앞에 나서서 잠든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일어설 것을 호소했었지만
모두 들은 척도 않하고 비웃고만 있었다.
그녀는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위대하신 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위대하신 하느님은
그 어리고 연약한 소녀을 앞장 세워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해내는 원동력이 되었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착각이나 망각으로 인하여 오류를 범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둘이 얘기를 나누는 관계에서도
상대보다 내가 더 큰 목소리로 말해야 그 상대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또 어떤 일을 말하며 상대는 모르고 있는 지식이나 비밀을 자기만이 알고 있는 냥 자랑스럼 표정으로 말하여
자기가 더 훌륭함을 나타내려 하는 경우도 보게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못하다는 사실이 불과 오래 지나지 않아서 다 드러나기도 한다.
수도원이나 피정 같은 모임에서 우리는 과연 (침묵) 이 금이란 것을 깨달으며 침묵이 얼마나 더 크게 말하며
고요함이 떠들썩함 보다 얼마나 큰 힘이며 위대한가를 깨닫게 된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이제 며칠을 지나면 달랑 한장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달력이 한장만 남게 되기 위하여
우리는 정월 초하루 부터 시작하여 그 많은 세월을 거치며 여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과연
나는 그 세월을 무엇으로 채우며 지금에 이르렀을까를 생각해 본다.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 보인다.
기억에 없다고 해서 곧 내가 보이지 않는 작고 좋은 일을 낮은 자세로 실행하며 살아왔다는 말은
결코 이웃에게 보이려는 꾸민 말로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늘 그렇게 살아왔었듯이 게으르고도 또 나태하며 위선적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고하고
이웃보다 더 많이 아는 체 하고 목소리는 더 큰 것처럼 잘난 체 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뒤늦은 이제라도 뉘우치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아주 낮은 마음으로 좋은 일 한 번 해야할 텐데.
그렇다. 걸을 수 있다고 뽐내며 층계를 혼자 오르기 보다는 불편해 하는 이웃 할머니를 만나면
손을 내밀어 나의 조그만 힘이라도 필요할지를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