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한 주일 내내
주룩 거리며 내리던 비는 내 마음까지 찌뿌듯한 안개로 감 싸 안았었는데
오늘 아침
모처럼 반짝 쨍하고 쏟아지는 햇살은
나 같은 게으름쟁이에게 마저도
유리창을 닦고싶다는 충동을 일깨워 주었다.
겨우내
그렇게도 내려와 쌓이던 하얀 눈, 그리고 진눈깨비들이 엮어낸
온갖 얼룩이들은 보란듯이 늘어붙어 유리창과 한몸을 이루고 있었다.
그깟 얼룩이 쯤이야.
우습게 보고 시작했는데.. 깔보일 얼룩이는 없었다.
기왕 내친 김에 다른 구석 구석까지 훔치고 닦고..
기분 좋은 땀방울이 내려와 콧잔등에 앉았다.
이제 맑아진 유리창은
더 눈부신 밝은 빛을 받아 안아서 온 방안을 감싸 안아 주었다.
햇빛은
언제나 내 곁에서 비추고 있었는데.
더럽혀진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씻겨진 유리창이 그 맑은 빛을 배달해 주고 있다.
유리창 그 자신은
그일로 덕 보는 일도, 손해 보는 일도 없다.
다만 빛을 날라다 배달해 주는 일만 할 뿐.
나의 주님도 언제나 내 곁에서
날 바라며 계실 것이다.
다만 내 마음이 얼룩져 가로 막거나 배척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틈 나는대로
얼룩을 내 마음으로부터 닦아 내어
평화의 주님이 마음 안을 차지하시도록 하자.
(물 잔)
콧잔등의 땀을 훔쳐내고 나니
물 한잔 생각이 난다.
가득히 눌러 부어 숨 돌릴 새 없이 들이키니
하 -아 !
목 마를 때 물 한잔은 언제나 꿀맛.
영원히 목 마르지 않을 샘물 이시라는 예수님,
그 생수는 얼마나 꿀맛일까?
물은
정말 나의 선생님이다.
그릇을 준비 못해 흘릴라 치면 땅 밑으로 스며 사라지고,
종짓잔에 담으면 모자란대로 그대로 머물며
큰 대야에 담으면 또 그런대로 넉넉히 풍채를 뽐 내지만
모두 흘러 담아낸 바다에 이르면
과연 장관을 이루고야 만다.
사람들은 물맛이 좋다하고
자기가 만든 구정물을 더럽다 구역질도 한다.
쓰나미를 만나면 또 무섭다 두려워 도망 한다.
물은 언제나 그렇게 거기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 만드는 그 모양대로
작은 잔에도, 또 큰 잔에도 하라는대로 그렇게 순종하였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생수,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날 바라시며 계실 것이다.
다만 내가 그를 멀리 하고 배척하며 고개를 돌려 외면할 뿐이다.
‘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 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요한4,15)
그렇게 간청하던 우물가의 여인처럼
오직 그 생수만을 바라며 하루의 삶을 채워 나가자.
( Double Bogey 인생 )
언젠가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만났던 한 노파가 나에게 물었다.
” Hey, Are you single ? “
아니 망칙하게스리.. 그건 왜 묻는가? 그건 알아 뭣에다 쓰려는고?
그냥 “네.” 면 네, 아니면 “아니오.” 그러고 말면 될 일을
그 때 잔뜩 꼬부러진 나의 심통은
그렇게 쉬운 한마디를 구태여 제껴 놓고,
” No. I am double. “
그렇게 퉁명스런 한마디로 바꾸어 내 뱉자 그만 정내미 떨어진 표정으로 물러 가고 말았다. 아니 아니면 그냥 아니라 할 것이지 저런 뻔떼 하고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겠네.
아마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노인에게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했던 말은 사실 나쁜 뜻으로 한 말도 아니고 맞는 말이었다.
나는 Double 이다.
이제와서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분명 나는 과연 Double 임에 틀림없다.
아니 어쩌면 Triple 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되돌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Double 이였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 숲속에라도 숨어들고 싶을 그런 창피한 Triple 이다.
골프 시합 하는 걸 보면,
어떤 이는 스윙도 상큼하게 Birdie 도 잘 하고 못해도 Par 를 하건마는 나는 내 삶속에서
늘 Double 아니면 Triple Bogey 나 해대며 살아온 셈이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이웃에게 부끄럽고,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조상에게 부끄럽고, 자손에게 부끄럽고
무엇보다
이 못난이도 끔찍히 사랑하실 나의 주님앞에 부끄러운 얼룩진 유리창처럼
그렇게 부끄럽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Double 됨을 부끄러워 한대서 그것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건가?
다만 이제라도 남은 시간 그 안에서 주님안에 살며 주님이 내 안에 사시도록 하면
그나마 간신히 Par 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으로 나는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