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헤아릴수 없는 꽤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헤어지며 또 만나곤 하게 되는것 같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치고 지나처도 그들간의 관계는 어떤 인연이 성립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까지 맺어진 모든 인연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짧게는 잠시 만나서 악수 한번 나누고는 헤어진 인연부터 평생을 곁에서 같이한 경우까지 다 지나서 돌이켜 보았을때,
” 아! 정말 다시 한번 되 돌아갈수만 있다면…” 그렇게 다시 한번 꼭 만나고 싶은 아름다운 만남이 있는 반면 기억에서 조차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몸서리 처지는 섬뜩한 인연도 없지 않을것이다.
어느 경우였건 결국 내가 그 만남을 어떻게 받아 들였느냐 하는 내 마음 먹기에 달린것이라면 모두 (내 탓)일까?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였어…..”
특히나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만남은 주관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일뿐 우연한 만남은 없을것인데 그래도 마땅히 거룩하게 봉헌해야하는 미사도중에서 마저도, 친교를 한다고 들어서는 그 장소에서도 이웃하는 모든이를 곱게만 볼수 없는 완악스런 교만은 뿌리채 뽑아야 할텐데.
” 나는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한 못된 죄를 지었나이다.” 하느님과 사제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고 나서다가 또 만난 그 형제를 일곱번씩 일흔번을 미워하는 구제불능의 교만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초점은 빗겨가고 내 마음의 본성을 표현하다보니 괜히 나의 구린 속만 다 들통 나고 말았네. 본론으로 돌아가야지 더 나오기 전에.)
만났다가 헤어질때 많은 경우 ” 긋 빠이 ” 그렇게 말한다.
사랑하던 내 만남을 그 인연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만날수 없게되는 시간에도 떠나는 영혼에게 검은 옷을 입고 ” 긋 빠이 “하며 인사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 See you again “이라고 말하자.
부활의 신비를 믿지 않는 자들이 Good bye 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자)고 말하자.
“헤여지기 섭섭하여 망서리는 나에게 긋빠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장갑 낀손…”
그때 유행하던 이런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제끼던 어릴때 그 동무를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는게 그 노래 탓 이라고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지는 말아야지.
그래도 긋빠이는 검은 장갑 낀자들이 말하도록 하고 우리는 또 만나자고 말 하자.
”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나를 다시 보게 될것이다.”
(요한16.16, 마르16.8, 마태28.10)
”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것이다.”(요한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