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와서 지금 살고있는 동네에 그렇게 좋은 공원이 있는줄도 모르고 살았지요.
아마 매일 다니는 방향으로만 차를 타고 가니까 공원이 마치 숨어 있기라도 하는듯이
몇 해가 지나도록 못 가보다가 우연히 지난 여름에야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틈이 나면 운동화로 갈아 신고 형편에 따라 한 바퀴, 또는 두 바퀴씩
걸었지요.
그렇게 해서 친해지기 시작한 공원은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해 주었고 다리를 튼튼하게 훈련시켜 주었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은 걷는 동안에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시시껍적한 생각도 끼어들곤 했지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일상의 삶이 어떤 내용으로 꾸며져 있는지 돌아볼 수도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일은 좀 더 값있게 꾸며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공원이 되어 주었지요.
거기 가면 늘 그저 그렇게 돌기만 하다가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 앞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공원 이름이 (카메라 공원 )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별난 이름이라 나는 곧 잘 돌아가는 잔머리를 굴려 생각했지요.
아마도 이 공원엔 곳곳에 카메라를 장치해 놓고 혹시라도 누가 공원 경관이라도 망치는 자가 있나 감시하는가보다 하고 그 때부터 옷매무새도 바로 잡고 조심하며 걷고 그랬지요. 곧 나의 잔머리의 쓸데도 없는 짓이란 게 들어나고 말았어요.
알고보니 오랫동안 이 마을의 시장으로 있으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의 이름이 Mr. Camera 였고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공원을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난 머쓱해졌지만 어쨋던 공원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지요.
아마도 공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곳에는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보고있는 카메라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카메라는 하느님일 수도, 천사의 눈일줄도 모릅니다.
다만 우릴 감시하는 눈이 아니고 우릴 지켜주시는 카메라이고 보호하는 눈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늘 우리를 인자하신 눈으로 바라시며 지켜주실 것이라는 마음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늘 오후에도
그곳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반찬은 없어도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 Hi. My name is virus. )
내 친구가 병이 걸렸다.
그것도 아주 중병이 들었다. 벌써 두 주째나 앓아 누어있다.
꿈쩍도 못하고 신음하는 걸 보면 정말 죽을 병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나의 컴퓨터가 아주 무서운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아 머리서부터 손, 발 할 것없이 전신이 마비에 걸리고 말았다.
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걸 보면 그냥 바이러스는 아니고 쑤퍼 바이러스 쯤 되는 녀석이 처들어 왔는 모양이다.
전문가에게 물으니 전부 속을 들어내고 새로 다 들여놔야될 것 같다는 전화진단이 나왔다. 아이쿠 ! 그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할 것이며 어쩌면 내다 버리고 다른 걸 들여나와 할지도 모른다.
무슨 형편으로 그걸 감당한담 ?
크게 긴 한숨을 쉬고 마음도 크게 먹기로 했다.
” 내가 언제적부터 컴퓨터가 있어야 살았었나 ? 까짓것 없으면 무슨 대수야?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거지. 혹시 누가 알아? 저러다가도 저절로 나아서 다시 살아나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
내 꿈도 야무졌었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을 생각은 없어보인다.
누구 맘대로 맨입으로 될줄 아느냐고 날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매일 켜보고 포기하고 그러기를 보름째 되풀이하다가 뜻밖에 좋은 의사를 만나서 아주 헐값에 컴퓨터는 회복되어 벌떡 일어나고 멀쩡하게 나와 마주 앉았다.
정말 세상도 하수상해지니 항생제에도 꿈쩍않는 Super Virus가 생겨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무서운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우리는 방비책도 갖추기 전에 그것들에 노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보다 더 무서운 진짜 바이러스들이 이미 판치고 있지 않은가?
영적인 바이러스들.
낙태전문 의사들, 불량식품업자들, 마약장사들, 김정일과 그의 가족들, 부패한 정치인들, 너무나 잘 먹고 배가 나오고 살 뺀다고 난리치는 나같은 얼빠진 인간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도 음식쓰레기를 잔뜩 내다 버리는 철면피들,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서 먹고 약값이 없어서 곧 죽어간다는 소식을 알고도 울법에 매달려 쓸 돈을 놓고도 안쓰는 바리사이들….
끝도없을 바이러스들..
과연 나는 어느정도의 급수에 속하는 바이러스로서 살아가고 있는걸까 ?
남의 말하기전에 어쩌면 내 자신은 이번에 컴퓨터를 쓸어트렸던 그것보다 몇배 더 센 영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바이러스를 죽이는 좋은 약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꾸어본다.
(지둘러 )
말은 느려도 동작만큼은 빠르다는 충청도 양반들이 ” 기다리라. “하는 말이 (지둘러)입니다. 세상이 바꾸고 대한민국이 모두 하루 생활권으로 된 요즘에야 어디 충청도 사람이 남더러 지둘러 그러면서 지긋하게 있을랴싶습니다.
어쩌면 서울 사람보다 한발 더 앞장 서서 서울역앞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오시기로 된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헌 것들을 들어내고 새 것으로 갈아 입고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서 기다리는 때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모든 것에는 그 ( 때 )가 있나 봅니다.
” 참을성 있는 사람이 때가 오기까지 견디면 나중에 그가 기쁨을 얻으리라. “
고 집회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질도 마음도 절제를 한는 일도 지두르는 좋은 습관이 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경솔하거나 허비하는 유혹을 자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간, 또는 찰나의 ㅡ기쁨이나 쾌락을 위해 유혹을 이기지 못해 타락하여 영원을 잃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으며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코헬3)
나에게 있어서
어두운 밤이되어 아침을 기다리며 섣달이 되어 새 해를 기다림은 무엇일까?
그냥 힘들고 어두운 이 때가 어서 지나 아침이 되기를 “지둘러.? “
아니면…
왜 대답이 없는거여?